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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은 지도와 그림을 각각 다른 곳에서 오려와 필자가 조합하여 만든 작품.

 
38선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조화유 /작가/영어교재 저술가
  • ▲ 재미 작가 조화유씨.
    ▲ 재미 작가 조화유씨.
    <백년전쟁> 동영상은
    왜 오역했나? 번역의 반역?
                                        
    얼마 전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을 두고,  좌우익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친일명단]이란 것을 만들어
    논란을 일으켰던
    <민족문제연구소>란 단체가 만든 그 동영상은,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한국의 경제발전 토대를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훼손시키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 같아 보인다.
    그 동영상의 이승만 매도는 영문
     자료의 과장 번역부터 시작 된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대한민국 건국 2개월 후인 1948년 10월 28일자로 발행한
    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 생존 전망)의 일부에는
    다음과 같은 문단이 나온다,

    Rhee has devoted his life to the cause of an independent Korea with the ultimate objective of personally controlling that country. In pursuing this end he has shown few scruples about the elements which he has been willing to utilize for his personal advancement, with the important exception that he has always refused to deal with Communists. This accounts for the fact that Rhee has been the symbol of anti-Communism in the Korean mind.

    <백년전쟁> 동영상은,
    위 글의 전반부만 따서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오역에 가까운 과장된 번역을 했다.

    정치인이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면서
    나중에 조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번역했다.
    그리고 이승만의 철저한 반공사상에 대한 부분은 아예 번역도 하지 않았다.

    “번역은 반역이다”
    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위 영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비교적 정확하다.

    “이승만은
    그의 생애를 조선 독립을 위해 바쳤다.
    그는 궁극적으로
    조선을 자신이 직접 통치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득세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이용했다.
    단, 예외적으로
    그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타협은 항상 거부했는데,
    이 때문에 그가
    조선인들의 마음에 반공주의의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백년전쟁> 동영상은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 하나에 대해서는
    단 두 마디 밖에 하지 않았다.
    동영상 해설자는
    "미국과 쏘련은 한반도를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38선 이북은 쏘련군이,
    38선 이남은 미군이 점령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얼른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 같지만,
    정확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과 쏘련은
    한반도를 분할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일본-이탈리아 3개 동맹국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던
    미국-쏘련-영국-중국 등  주요 연합국 수뇌들은
    1943년 카이로와 테헤란에서,
    1945년에는 얄타와 포츠담에서 만나
    전쟁이 끝난 후의 세계 질서 재정비에 대해 논의했지만,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될 한반도를
    남한과 북한으로 분할하기로 결정한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도 한반도는 결국 남과 북으로 분할되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지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자마자,
    즉시 일본 본토는 물론,
    한반도 내의 일본군으로부터도 항복을 받아야 했는데,
    미군은 그때 한반도에서 1천km 남쪽 멀리 오끼나와 섬에 있었고,
    또 미군은 주로 일본 본토에 들어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까지 군대를 신속히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쏘련은
    신속히 군대를 진입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바로 다음날(8월9일)에는
    벌써 함경북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8월12일에는 청진-나진-웅기-경흥 등을 점령해버렸다.
    이런 속도라면 불과 2~3주 사이에
    소련군은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8월14일(워싱턴 시각) 밤늦게 서둘러
    한반도 중간의 북위 38도선까지만
    쏘련군의 남하를 허용하기로 결정하고 쏘련에 통고했고,
    쏘련이 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2차세계대전 중 쏘련은 미국과 같은 편에서 독일을 상대로 싸웠을 뿐,
    일본과는 겨우 1주일간 적대관계에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일본과 한반도에 관한 한 쏘련의 발언권은 거의 없었으므로
    38선 이남은 점령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한반도에 들어간 쏘련군은
    곧 38도선 이북의 자기네 점령지역을
    쏘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당시 36세/본명 김성주)을 앞세워
    쏘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연합국에게 1945년 봄에 항복한 뒤,
    쏘련은 전쟁 중 점령한 동부독일을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 등
    동 유럽 나라들을 전부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미국 국무부는,
    쏘련이 일단 점령한 나라는 반드시 적화(공산화)시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쏘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위 38도선에서 쏘련군의 남하를 저지시켰던 것이다.


    만일 그때 미국이 38선을 경계선으로 긋지 않았더라면 ,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쏘련군이
    먼저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했을 것이 뻔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아예 탄생하지도 못하고, 
    조선인민공화국만이 만들어져
    우리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억압받는 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1945년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것은,
    우리에게는 축복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점령한 서부독일과 일본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여
    오늘날 경제대국들이 되었고
    역시 미군이 점령했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2위 경제강국이 되었지만,
    쏘련군이 점령했던 동 유럽 국가들은 쏘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가
    쏘련의 몰락과 함께 간신히 자유를 되찾았고
    역시 쏘련군이 점령했던 북한은 아직도 공산주의에 집착하는
    무능한 김씨 세습독재정권에 의해
    지구상 가장 가난하고 자유없는 나라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북하고 종북하는 자들은
    “미국 때문에 한반도가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전쟁의 비극도 발생하였고
    아직까지 우리민족이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리 민족의 불행의 씨앗"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자들의 억지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른바 우익 보수진영에서도
    38선의 축복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천만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어느 것에도
    [38선의 축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아마도 보수진영조차도 38선 형성 과장의 진실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역사학자도 아닌 필자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면,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 같으니까
    이제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진실을 추구해 보기로 하겠다.


  • ▲ 재미 작가 조화유씨.

    38선이 그어질 당시의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1955년 출판한 회고록
    [Memoirs by Harry S. Truman] (트루먼 회고록)의 444∼5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내가 듣기로는 번즈 국무장관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멀리 한반도의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도록 선을 그으라고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에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한반도로부터의 먼 거리와 병력 부족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었다. 

    따라서
    (먼저 한반도에 진입하는 쪽에서
    한반도의 일본군 항복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소련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우리가 실제로 병력을 파견하기에는
    38도선도 사실은 너무 멀리 잡은 것
    이었다.
    소련이 이의를 제기해서
    우리가 실제로 병력을 제때에 보낼 수 있는 거리에다
    선을 그어야 했다면,
    그 선은 38도선보다도 훨씬 남쪽에 그어졌을 것이다.
    북위 38도선을 따라 군부가 선을 그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의 옛 수도 서울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38선을 그을) 당시에는
    일본의 항복을 받는 일을 양국이 분담한다는 편의성
    이외의 다른 생각은 없었다."


  • ▲ 재미 작가 조화유씨.

    왜 하필 38선인가에 대해서는 38선을 그은 당사자인
    당시 미국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 소속
    딘 러스크(Dean Rusk) 육군중령
    (후에 케네디, 존슨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 역임)의 말을 들어보자.
    1990년에 출판한 그의 회고록
    [As I Saw It]
    (내가 본대로) 124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있는 일본군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항복을 받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국무부와 국방부는 의견이 달랐다.
    국무부는 중국 본토의 가능한 한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
    만주의 주요 지점들이 우리 점령지역에 들어가도록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육군은 장래를 염려하여
    우리 군대가 아주 조금 있거나 거의 없는 지역들은
    아예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은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육군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 대륙에
    상징적으로 군대를 좀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한반도에 발판 같은 걸 하나 마련해 두기로 합의했다. 일본이 항복한 바로 그 날인 (미국 동부시각) 8월14일 늦은 밤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장) 찰스 본스틸 대령과 나는
    (국무부-국방부-해군이 합동회의를 하고 있던 회의실)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반도 지도를 자세히 보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이 점령할 지역을 선택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중략)


    [National Geographic] 잡지사가 만든 지도 한 장을 놓고
    우리는 서울 바로 북쪽에서 한 편리한 경계선을 찾았으나
    지리적으로 자연적인 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북위 38도선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스윙크>(국무부-국방부-해군 협의회)는
    우리 건의를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고,

    놀랍게도 소련 역시 이의 없이 동의했다.
    당시 미-소 양국 군대가 위치한 지점을 고려한다면,
    소련이 38도선보다 훨씬 더 남쪽의 선을
    요구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러스크의 이 증언을 보면,
    일본과의 4년간 전쟁에 지친 미국 군부는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했으나
    국무부가 우겨서 한반도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한,
    한반도 북쪽에 선을 그어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막으려했다]
    는 것도 알 수 있다.
    만일 군부의 고집대로
    미군이 한반도 진출을 아예 포기했다면,
    한반도 분단은 없었겠지만,
    지금 우리는 왕조식 김씨 독재정권 아래서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는
    반드시 이 점을 분명하게 알려야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역사적 진실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역사를 왜곡하여
    학생들에게 반미감정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근자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 바로잡기 운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워싱턴에서 조화유 (작가/영어교재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