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신해철'인가, '박진영'인가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러기 가족'이 늘어나면서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 땅에 건너간 어머니들의 한탄이 절로 커지고 있다. "나는 왜 영어를 제대로 못 배웠을까?" 공교육에서 6~8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도 '벙어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어머니들은 우리나라 언어 교육의 맹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는 학생들, 외국기업과 거래를 하는 상사 직원들, 외국에 이민 나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첨단기술과 선진화된 지식을 습득해야 할 기술인들…. 영어를 잘 못해 빚어지는 개인의 손실, 국가적 낭비는 측정할 길이 없다.

    언어는 소통(communication)의 도구이며 수단이다. 언어를 문화와 역사의 집체(集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문화나 역사도 결국은 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고 언어는 그 수단일 뿐이다. 현대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도 한다. 정보(information)는 무엇으로 얻는가? 정보는 서로 알고 있는 것, 각기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이다. 언어라는 도구 없이는 정보의 교환은 불가능하다. 소통과 교환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쪽의 언어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미국이 우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국익을 같이하고 있는 나라, 미국과 거래를 하고 있는 나라, 미국의 영향력이 많이 미치는 나라들이 영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통어'의 대열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영어에 그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언어문화의 전문가도 아닌 가수 신해철씨는 대통령직 인수위가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를 발표하자 비아냥조로 미국의 '51개주(州)' 운운하며 정책을 비판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외국어를 배운다고 우리가 그 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이다. 영어가 필요 없는 사람까지 '강제적'으로, 또 '몰입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배우고 시험 보고 있는 모든 과목들이 반드시 실생활에 필요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지우고 없애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언어의 국수주의는 지극히 해악적이다.

    어떤 학부모들은 영어 공교육 강화로 인해 입시과목이 영향을 받고 따라서 과외가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 현상은 다분히 있을 것이다. 과외는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그늘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과외의 비용에 견주어 가장 효율적이며 실용적인 것이 언어, 특히 영어에 대한 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부작용들은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큰 바다로 나가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소의 부작용과 과불급이 있겠지만 큰 덩어리를 보고 가야 한다.

    지금 세계는 '열린 세상'으로 가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벽은 쉴새없이 무너지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거리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우리라고 문을 닫고 살 수는 없다. 아니, 우리는 더욱 앞장서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동북아에 묶여 있으면 결국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의 밥이 될 뿐이다. 이때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무기는 도전정신과 언어능력이다. 지금 세계에서는 언어능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 그런 세상에 우리 자녀들을 영어의 '반벙어리'로 방치할 수 없다.

    세계를 다녀보면 이제는 영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재능 축에 끼지 못한다. 3~4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 인재들이 넘쳐나는 속에서 영어 하나로는 따라잡기 힘들다. 영어는 기본이고 영어 이외에 최소한 1개의 외국어, 예를 들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정도는 해야 말 상대로 낄 수 있다.

    가수 박진영씨를 보라. 그가 언어에 발이 묶여 한국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의 재능과 끼는 지금 어디쯤에 묻혀 있을까? 그가 뉴욕으로 나가 세계인들의 음악과 교류할 수 있었기에 그는 한국의 대중음악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적으로 누가 낫다든가 하는 비교를 하자는 게 절대 아니다. '박진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신해철'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이 나라 모든 어버이들이 선택할 문제이며 동시에 한국이 선택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