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 광고지표 기준' 조작 의혹 'ABC부수공사' 논란 일자 '정부광고법 시행령' 개정광고 집행 근거로 발행부수대신 '사회적 책무' 도입열독률 낮아도, 사회적 책무 지표 높으면 순위 올라
  • ▲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2021년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신문 유료부수를 검증해온 한국ABC협회 자료 활용을 중단하고 '열독률'과 '사회적 책무 점수' 등 새로운 지표를 토대로 정부광고를 집행하겠다"고 공표한 이후 '신문 열독률'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조선일보가 정부광고 집행 시 핵심 지표로 활용되는 '신문 광고지표' 순위에서 15위로 내려앉는 등 현실성이 떨어지는 자료가 정부광고주에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열독률 조사'는 지난 1주일간 읽은 종이신문의 제호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묻는 것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이 2021년 12월 30일 발표한 '신문·잡지 이용조사'에서 열독률 1위 매체는 조선일보(3.7355%)였다.

    '트루스가디언'에 따르면 해당 조사에서 한겨레는 열독률 6위(0.6262%)를 차지했는데, 같은 해 언론재단이 취합한 정부광고 단가 자료에서는 한겨레가 조선일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2022년 말 언론재단이 발표한 신문·잡지 이용조사에서도 조선일보는 열독률 1위에 올랐으나, 정작 중요한 '신문 광고지표'에서는 15위로 밀려나는 '굴욕'을 당했다. 열독률 조사에서 전년보다 한 단계 오른(5위)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책무 점수에서 감점이 적어 신문 광고지표 순위 7위를 기록했다.

    '열독률'과 '사회적 책무 지표', 6 대 4로 반영 '점수화'

    신문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열독률 순위와 신문 광고지표 순위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언론재단이 2021년 말부터 기존 열독률에 '사회적 책무 지표'를 6 대 4 비율로 반영한 점수로 순위를 매기면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결과 ▲신문윤리위원회 심의결과 ▲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결과 등에서 감점을 받은 조선일보 등이 광고지표에서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 책무 지표는 신문의 '신뢰성'을 측정하기 위해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 및 시정권고 건수 ▲매체자율심의기구 참여 여부 ▲자율심의기구에서 받은 주의·경고 건수 ▲편집·독자위원회 설치·운영 여부 등을 수치화한 것이다.

    27일 한 업계 관계자는 "광고는 매체 성향과 관계없이 독자들이 많이 보는 곳에 해야 효과가 있다"며 "언론재단이 신문 열독률을 조사했으면 있는 그대로 발표하면 되는데, 여기에 난데없이 신문 이용률과 상관도 없는 '사회적 책무 지표'라는 항목을 추가하고 매체 점수를 백분율로 환산해 3백여 신문사를 서열화하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언론재단이 신문사 영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문 광고지표 순위를 조사·발표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 이 관계자는 "정부광고법 시행령을 봐도 '문체부장관은 정부기관 등의 장이 홍보매체 선정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홍보매체 이용률 등의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만 돼 있을 뿐"이라며 "문체부 산하 기관인 언론재단이 신문사를 서열화하는 자료를 만들어 정부 광고주에게 참고하라고 전달할 이유도 없고, 그런 권한도 없다. 이는 명백한 시장개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BC 부수공사와 정부광고비 책정은 무관"

    트루스가디언에 따르면 정부가 2022년 1월부터 한국ABC협회의 인증부수를 정부광고 집행의 근거로 사용하지 않기로 확정한 것은, 2020년 11월께 ABC협회 유료부수 조작 의혹이 발생했을 때 언론재단 관계자 A씨가 더불어민주당 김승기 의원의 질의에 대한 자문을 구하러 찾아온 문체부 관계자 B씨에게 "정부광고는 ABC 부수공사 결과에 따라 광고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그게 두 배 부풀려지면 신문광고비 역시 두 배 지급한 것이라 큰일난다"고 답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이 같은 내용을 김 의원 측에 전달한 뒤 '법령상 ABC 부수공사와 정부광고비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문체부는 별다른 후속 대책 없이 A씨가 기획한 대로 언론재단에 정부광고 현안의 개선방안을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문체부는 '표본이 많아지면 그만큼 더 정확해질 것'이라는 A씨의 주장에 따라, 2021년 7월 기존 열독률 조사에 사용한 표본(5000명)보다 10배 많은 '전국 5만명 국민 대상 구독자 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실제로 문체부 산하 기관인 언론재단은 그해 말, 한 리서치 회사에 의뢰해 5만1788명(표본오차 ±0.43%)을 대상으로 열독률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 중 '신문을 구독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3.2%로 '표본크기'가 6836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의미도 없는 조사에 표본을 쓸데없이 10배나 늘림으로써 2021년 7억원, 2022년 13억원 등 2년 동안 21억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했다는 게 트루스가디언의 지적이다.

    표본크기도 모르는 상태서 '5만명 표본' 공표


    이와 관련, 또 다른 신문업계 관계자는 "보통 여론조사 통계를 보면 표본크기가 2000명 안팎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표본크기가 그 이상이 되더라도 조사가 정확하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고 일정한 값을 도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언론재단은 표본크기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5만명 표본'이라는 잘못된 설계를 발표한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신문 발행 부수로 신문사의 영향력을 판단하지 않고, 독자들의 주관적 응답이나 '사회적 책무 점수'로 랭킹을 매기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난다"며 "물론 기존 ABC 부수공사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표본 설계마저 잘못된 열독률 조사와 정성평가를 정부광고 집행의 근거로 삼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열독률 조작으로 광고단가 순위 바꾼 적 없어"


    관련 보도 이후 국민의힘에서도 비판성명을 내는 등 파장이 커지자, 언론재단은 "열독률 조작으로 언론사 광고단가 순위를 뒤바꿨다는 트루스가디언 등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언론재단은 29일 본지에 보낸 입장문에서 "정부광고 지표는 재단이나 광고주가 광고단가를 책정하는데 사용되는 자료가 아니"라며 "정부광고 지표는 정부광고법 시행령 제4조(홍보매체의 선정)에 따라 정부광고주가 매체를 선정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사에서 제시한 정부광고 단가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기사의 자료는 특정 목적을 위해 마치 '단가'가 실재하는 것처럼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한 언론재단은 "광고 집행은 △정부광고주의 광고계획(타깃, 내용, 예산, 희망 지면 등) △매체별 광고 수급상황 및 매체사가 제시한 단가 △기존 가격 등을 종합 고려해 협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재단은 "그리고 재단은 사회적 책임 지표를 40%로 하도록 강제한 사실이 없다"면서 "열독률과 사회적 책임 등으로 구성되는 정부광고 지표 배점 비율은 정부광고주가 자율 설정하고, 재단이 조작·편법을 통해 언론사별 광고단가 순위를 뒤바꿀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사회적 책임 지표, 40%로 강제한 사실도 없어"


    언론재단은 "'재단이 열독률 조사에서 통계학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했고, 미디어연구센터장 A씨가 허위 자문을 하고 엉터리 통계조사 방법을 동원했다'는 내용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언론재단은 "열독률 조사는 문체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문체부와의 협의를 통해 재단이 시행한 것"이라며 "그리고 조사 설계 단계부터 결과 발표까지 모든 과정에서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이 야기됐기에, 공공기관인 재단은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안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언론재단은 "감사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