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유엔 특별보고관 "징벌적 손배제 완전히 불균형"…한국정부에 권고서한"내년 3월 대선 앞두고 언론 자유에 우려… 허위정보 금지만으로 정당화 못해"
  • ▲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보낸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우려를 담은 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 캡쳐.
    ▲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보낸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우려를 담은 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 캡쳐.
    유엔 인권전문가가 한국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수정하라고 문재인정부에 권고해 파장이 일었다.

    1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 공개된 지난달 27일자 서한에서 이레네 칸 특별보고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내용에 추가적인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보와 언론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심각히 제한할 수 있다"며 "개정안이 그대로 채택될 경우 의도와는 정반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칸 보고관은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5배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 "완전히 불균형"이라며 "언론의 자체 검열을 초래하고 공익 문제에 관한 토론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언론인 취재원 누설 강요받을 수 있어"

    칸 보고관은 이어 "언론인들이 유죄 추정(고의·중과실)을 반박하기 위해 취재원을 누설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고, 이는 언론 자유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주요 쟁점인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제30조의 2) 조항을 두고도 "매우 모호한 표현으로 돼 있다"고 지적한 칸 보고관은 "뉴스 보도, 정부·정치지도자·공인 비판, 인기 없는 소수 의견 등 민주주의 사회에 필수적인 광범위한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칸 보고관은 이어 "이런 우려는 정보 접근과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이 특히 중요해지는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또는 그 기간 고조된다"고도 꼬집었다.

    1990년 한국도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19조가 정부에 의사·표현의 자유를 존중·보호할 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을 강조한 칸 보고관은 "허위정보 금지 취지 만으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할 수 없다. 당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해 (법의) 임의적 시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칸 보고관은 이런 우려에 따른 우리 정부의 추가적인 정보나 논평을 제공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ICCPR 19조 등이 규정한 정부의 책무와 어떻게 일치하는지 설명을 요구하고, 개정안이 국제인권기준과 일치하도록 수정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서한은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 구속력은 없다. 다만 회원국은 60일 이내에 답변을 제출해야 한다.

    외교부, 답변 준비 예정… 野 "국격 훼손"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일 서한 대응과 관련해 "(본회의가 열리는) 27일까지 여야 간 전문가를 포함한 협의체를 통해서 합의를 도출할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을 봐 가면서 외교부가 관계 부처와 상의해서 답변을 준비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유엔의 서한이 한국의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당 회의에서 "급기야 유엔까지 나섰다. 국격 훼손이며, 국제적 망신"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출신인지도 의심할 것이다. 혹여 올 가을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이라도 하려거든 더더욱 '언론재갈법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형두 "민주당, 국제 여론 이유로 법안 상정 연기"

    같은 당 최형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재갈법, 유엔까지 걱정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경고했다"며 "특히 대선을 앞두고 이 법이 노리는 목적을 정확히 지적했다. 선거기간 동안 자유로운 정보 소통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라고 짚었다.

    최 의원은 이어 "지난 27일자로 발송된 이 서한을 외교부·문체부는 며칠 동안 감추었고, 어제 유엔이 서한을 전격 공개하자 문체부는 뒤늦게 저희 의원실로 서한 원본을 보내주었다"며 "그런데 서한을 보니 유엔은 30일 표결 전에 국회의원들에게 이 서한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도, 대통령에게 보고된 듯하다"고 전제한 최 의원은 "이철희 정무수석이 30일 저녁 부랴부랴 민주당과 상의했고 민주당은 국제 여론을 이유로 법안 상정을 연기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