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일상화에 배달 수요 폭발적 증가… 배달업 종사자 위한 정책 필요배달하면서 쉴 시간도 장소도 없어… 배달기사노조 '라이더유니온' "배달기사 위한 쉼터 확충 필요"
  •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 앞 언덕을 오르고 있는 시민의 모습. ⓒ이지성 기자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 앞 언덕을 오르고 있는 시민의 모습. ⓒ이지성 기자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 앞. 한 손에 포장된 음식이 담긴 가방을 들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뙤약볕 아래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헉헉대며 언덕을 오르자 마스크 안은 뜨거운 습기로 가득 찼다. 

    음식을 배달지에 전달하자 곧바로 휴대전화에서 '띠리링' 소리가 울렸다. 다음 배달 콜이었다.   
       
    폭염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탓에 배달업계가 때 아닌 호황을 누린다.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배달음식 수요가 증가한 탓이다. 덩달아 배달업 종사자들도 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4일에는 더위에 지친 50대 배달기사가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무더위 속 배달기사가 겪는 현장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일일 배달 알바에 나섰다. '배민커넥트'는 누구든 시간 날 때마다 부업으로 배달 알바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동차·자전거·킥보드·도보 등 이동수단 선택지도 다양했다. 

    해당 서비스를 통해 가장 힘들 것으로 보이는 도보 배달을 선택했다. 도보 배달원이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스마트폰에 배민커넥트 앱을 설치하고 간략한 신상정보를 입력한 뒤 PC로 1시간 분량의 안전보건교육을 시청했다. 이로써 일일 배달기사가 될 준비를 마쳤다.            

    이른 아침부터 쏟아지는 배달 콜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첫 배달 요청을 받았다. 배차받은 위치에서 600m 떨어진 도시락점에서 음식을 픽업해서 700m 떨어진 곳에 배달하는 일이었다.

    첫 배달 수익은 3200원. 보통 배달료는 날씨나 수요 등에 따라 건당 3000~4000원 사이에서 형성된다. 여기에 '하루 목표 배달 건수 달성' 등 각종 프로모션 행사에 참여하면 가격이 더 붙기도 한다.         

    두 번째 배달 이후부터는 이동 거리가 좀 있는 곳에 배차됐다. 음식을 픽업하는 매장과 배달지까지의 거리가 1km를 넘기 일쑤였다. 배달 한 건당 기본 30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경험이 있는 배달기사들은 배달 거리나 배달료에 따라 배차를 거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일삼아 고른 체험이었던 만큼 일단 배차가 들어오면 다 받아들였다. 고생길에 접어든 것이다.

    무더위에 쉴 시간도, 장소도 없다
  • ▲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철도길 공원 벤치엔 이용을 제한하는 테이프가 쳐져 있다. ⓒ이지성 기자
    ▲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철도길 공원 벤치엔 이용을 제한하는 테이프가 쳐져 있다. ⓒ이지성 기자
    5건의 배달을 완료하자 시곗바늘은 정오를 가리켰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이날 서울은 최고 기온 35도를 기록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자 마스크 안은 습기로 가득했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이동 거리가 7km에 이르자 옷이 온통 땀으로 흥건해졌다. 

    걷기에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신이 있었지만, 발바닥에서도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배달 주문이 가장 많은 피크 시간대에 마냥 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더 큰 문제는 쉬고 싶어도 마땅히 쉴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공공시설의 야외 벤치는 모두 출입이 통제됐다. 배달하다 들른 연남동 경의선 숲길공원도 사정은 똑같았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신호등 그늘 아래서 쭈그리고 앉아 2~3분 쉬는 것이 다였다. 이 순간만큼은 '신호가 빨간불에서 멈췄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화장실도 문제였다. 배달 도중 음식을 든 채 용변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공공건물의 화장실 출입을 통제하는 곳도 많았다. 배달음식을 픽업하기 위해 들른 매장에서도 화장실 이용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같은 매장에서 '조대(음식조리 대기)'하던 한 배달기사가 화장실을 쓰겠다고 하자 업주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2km 걸었어도 플랫폼 AI는 7.5km로 계산
  • ▲ 기자가 이날 총 이동한 거리는 22km지만 배민커넥트 앱에는 7.5km로 기록됐다. ⓒ배민커넥트
    ▲ 기자가 이날 총 이동한 거리는 22km지만 배민커넥트 앱에는 7.5km로 기록됐다. ⓒ배민커넥트
    오후 5시 반 배달 운행을 종료했다. 이날 하루 8시간 동안 11건의 배달을 완료해 4만1400원의 수익을 거뒀다. 시간 당 임금으로 치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날 총 도보배달을 하면서 이동한 거리는 22km.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배민커넥트 앱에 찍힌 총 이동 거리는 7.5km였다. AI가 이날 경로를 지도상 직선거리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거리의 간극은 배달기사에게 불합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가 계산한 거리와 시간에 맞춰 배달기사들이 제때 도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달지가 산지나 언덕 위에 있을 때는 배달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는데 AI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왔다.
        
    부업으로 도보배달을 하는 직장인 조모(30) 씨는 AI 배차 방식이 "실제 도보 거리와 이질적인 직선거리 배차 방식은 잘못됐다"며 "언덕이나 산지가 많은 지역에서는 배달료에 할증을 붙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달기사 위한 배달 플랫폼 운영 개선 필요
     
    배달기사노조인 라이더유니온(위원장 박정훈)은 폭염 속에서 일하는 배달기사들의 근로환경과 AI 배차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했다. 

    라이더유니온 소속 이병환 배민협의회장은 "폭염 속에서 배달하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가 필요하다"며 "배달 플랫폼이 정부와 협력해 편의점이나 주유소 등을 활용한 소규모 쉼터를 확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AI 배차 방식은 문제가 많다. 보도배달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배달원들에게도 직선거리 배차는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배달 플랫폼이 AI의 알고리즘만 믿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배달업계 한 관계자는 "배달기사들의 고충을 인식하고 지난 7월 배달원 4300여 명에게 쿨시트·선스틱·쿨토시 등 여름용품 패키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며 "AI 배차 방식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스템 개선에 관심을 갖고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