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병제' 청원에 18만 명 동의하자 "대한민국 여성의 삶 이미 지옥, 병역의무는 가혹" 청원
  • ▲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8만 명의 동의를 얻자 여성 대신 '소년병'을 징집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뉴데일리 DB
    ▲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8만 명의 동의를 얻자 여성 대신 '소년병'을 징집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뉴데일리 DB
    군대 징병 문제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검토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4일 만에 18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쌓여있던 남성들의 불만이 표출되자 여성 대신 중·고등학교 남학생을 '소년병'으로 징집해 달라는 맞불청원까지 올라온 것이다.

    "남성만 병역의무 후진적" vs "여성의 삶 이미 지옥"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나날이 줄어드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서 높아진 징집률 만큼이나 군 복무에 적절치 못한 인원들마저 억지로 징병 대상이 돼버리기 때문에 국군의 전체적인 질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여성 징병제'를 촉구한 배경을 설명했다.

    "성평등을 추구하고 여성의 능력이 결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한 청원인은 "정부는 여성에 대한 징병제 도입을 검토해주시길 바란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 청원에는 22일 오후 2시 기준 18만8022명이 동의한 상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징병제인데 남자만 가느냐', '여성들이 사병 입대는 안 하면서 경찰이나 소방은 입맛대로 골라 간다', '여자들도 군대를 가봐야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등의 말들이 쏟아졌다.

    실제로 2019년 7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남성 1036명과 여성 9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여성의 53.7%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동의한 점도 '여성 징병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 같은 청원에 지난 21일 '여성 징병 대신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 주십시오'라는 맞불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현역 입영 자원이 부족하면 여성 대신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을 징집하라"며 "각종 가부장적 악습과 유리 천장, 여성 대상 범죄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 여성의 삶은 이미 지옥 그 자체인데 병역의 의무마저 지우려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에는 같은 날 기준 3944명이 동의했다.

    전문가 "편 가르기 아닌 미래 군대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이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규정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동영상 사태, 여경 기동대에만 근무 혜택을 준 경찰 등 남성 역차별 문제가 지속되면서 그동안 쌓인 남성들의 불만이 여성 징집으로 표출된 것 같다"며 "지금의 '여성 징병제' 이슈는 편 가르기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편 가르기가 아닌 인구 감소에 따른 징병 문제 해결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 역시 "현재의 '여성 징병제' 논의 배경을 보면 의도 자체가 순수하지는 않지만 생산적 논의로 이어가면서 성평등에 대한 이해를 확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그러나 단순히 남성들도 군대에 가니 여성들도 가는 것이 평등하다는 일차원적 수준의 논의가 아니라 군 복무에 대한 남녀 간의 서로 다른 생각 차이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방부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공론화 필요"

    앞서 2014년 헌법재판소는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을 대상으로 전원일치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현저히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여성 징병제'에 따른 논란이 불 붙자 국방부는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병역 의무 대상과 복무 기간, 민방위 편입 등 병역법과 민방위기본법에서 많은 개정 소요가 따를 것"이라며 "여성 징병 문제는 소요 병력 충원에 국한되지 않고, 양성 평등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견해를 내놨다.

    현재 '여성 징병제'를 시행 중인 국가는 북한·이스라엘·노르웨이, 스웨덴 등 8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