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수 없는 다리?...비장한 각오는 빠를수록 좋다
  •  '판문점 선언‘이 나왔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시각과 접근법이 다시 ’민족‘이란 이름의 ’정서의 그릇‘에 담겨지고 있다.
    이 ’민족‘이란 말 속에 ’1948년에 세운 대한민국‘과 그것을 지지하는 진영은 포함되는가, 포함되지 않는가?
    ’보수패당‘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그 진영, 그리고 ’적폐세력‘으로 낙인 받고 있는 그 진영이 말이다.

     ‘종전선언’ ‘항구적 평화체제’ ‘한반도 완전 비핵화’ ‘적대행위 종식’ ‘서해(西海) 공동어로’
    ‘기존의 남북 간 합의의 준수’ ‘경제협력을 위한 공동조사’ 등 일련의 합의와 어휘(語彙)들은
    사전(辭典)적으로 볼 때는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말보다 더 강하고 실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그런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 주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김정은은 극좌독재 이데올로기의 입장에 서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과 그 이전의 여러 변혁적 운동사의 맥(脈)을 잇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주체가 ‘평화체제’ ‘한반도 비핵화’ 적대행위 종식‘ ’남북 간 기존합의 준수‘를 말할 때는 그 뜻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생각하는 뜻과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남한 자유민주 진영의 세 당사자들이 각자 생각하는
    ’평화‘나 '비핵화'가 과연 같은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낙관할 수 없다.

    이 차이를 정서적 ’민족‘ 운운으로 적당히 얼버무릴 순 없다.
    차라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합의 가능한 것만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면서 마치 벽돌을 쌓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편이 한결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은 그런 확실한 방식보다는 불명확한 ’포괄적 합의‘ ’원칙적 합의' ‘당위론적 합의’의 형식을 취했다. 이건 앞으로 실천과정에서 진영들 사이에 간단치 않은 혼선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판문점 선언’과 한-미 동맹의 상관관계다.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권이 이처럼 ‘우리민족끼리’ 민족 내부논의 위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가겠다고 하면, 그 진척과정에서 한-미 동맹, 주한미군, 동북아시아의 미국의 전략적 입지, 국제적인 대북제재는
    향후 어찌 된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판문점 선언’의 두 주체는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거나, 속생각은 있어도 밖으로 표현하진 않았거나, 했을 것이다. 디테일은 향후의 일로 미루어진 셈이다.

     문제는 그 디테일이다.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있다고 했지만, 그 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판문점 선언’의 ‘평화’ '비핵화' 다짐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한-미 동맹, 그리고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맞닿으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럴 경우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한-미 동맹 지지진영은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민족’ 운운은 “지금은 각자의 다름을 따지지 말자”는 얼버무림의 전술적 의도를 함축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정적 선택의 기로에 이르러선 상황은 급속도로 ‘충돌’로 갈 수 있다.
    이 때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때가 너무 늦었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래서 ’비장한 각오‘는 빨리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갈 것임을 천명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겠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어떤 다리, 어디로 가는 다리인지는 알 수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자유인 개개인들은
    역사상의 자신들의 자리를 지탱할 것인가, 말소당할 것인가?
    각자가 조용한 가운데 깊이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격동하는 역사는 서있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8/4/27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