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수석 직접 예방, 靑 풀취재단 허용 등 이례적 행보… 금강산 노쇼에서 국면전환 노린 듯
  • ▲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그는 오는 31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 평창 올림픽 초청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뉴데일리 DB
    ▲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그는 오는 31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 평창 올림픽 초청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뉴데일리 DB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오는 3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예방해 평창 동계 올림픽 초청장을 전달한다.

    당초 초청장만 보낼 예정이었지만 정무수석이 직접 나서면서 격을 높인 것으로, 평창 올림픽과 관련한 청와대의 고민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병도 정무수석이 오는 31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해 평창 올림픽 초청장을 전달할 예정"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도 오늘 관련 사실을 언론에 인지시켰으면 좋겠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개막식, 폐막식 등 올림픽 주요 행사에 참석해주실 것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전달하려는 게 한병도 정무수석의 예방 목적"이라며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무수석비서관실에서 케어하는 것이 맞다. 원래 소관업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자국에서 주최하는 스포츠 행사에 전직 대통령을 초대하면서 정무수석을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청와대는 "지난 정권이 어떤 방법으로 초청장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정무수석을 보낸 적은 이전 정권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청와대는 또한 이 현장에 청와대를 출입하는 풀(POOL) 기자들이 풀단을 구성해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지했다. 청와대 풀단 기자들은 대통령을 취재하는 기자들로, 현직 대통령의 행사외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정무수석의 취재를 위해 청와대 풀단을 가동한 것이다.

    나아가 초청장의 '명의'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문재인 대통령으로 격이 높다. 한병도 정무수석은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및 주요 경기 초청 명의는 IOC이며, 대통령이 주최하는 사전 리셉션 행사 초청 명의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청와대 안팎에서는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 이름으로 초청장이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데, 이보다 정중히 예우하기로 한 셈이다.

    이는 앞서 지난 18일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청와대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이 전 대통령이 최근 이뤄지는 검찰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박수현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날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에 초청장을 전달하기로 했다. 다만 이때는 정무수석이 직접 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30일 갑자기 정무수석의 예방을 알린 것이다.

    청와대가 비록 'MB 측이 오늘 공개하기를 바란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여러 정황상 굳이 청와대가 정무수석을 보내고 청와대 풀취재단까지 투입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초청장을 보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 평가다.

    이같은 청와대의 행보는 국면전환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평창 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데다, 북한이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를 취소키로 하면서 평창 올림픽을 둘러싼 실익은 물론 이벤트 자체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당초 평창올림픽에 '평화 올림픽' 프레임을 씌워 북한의 참가를 강하게 추진하면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과감한 결정도 내렸다.

    그러나 남북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과 함께 북한 현송월의 방남이 한때 중단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여기에 북한이 다음달 8일 대대적인 군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도 알려졌다. 급기야 남한 언론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놓자 북한은 지난 29일,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 취소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우리 정부는 "금강산 행사 취소는 유감이며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말대로 될 가능성은 작은 상태다.

    특히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번 금강산 남북 문화행사가 취소된 지점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평창 올림픽에 참가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익이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핵화 등 안보 관련 논의가 진전이 없는데다, 평창에 방문한 북한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북한 체제선전에만 열을 올린다면 문재인 정부에게는 도리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 특보는 같은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북한 국내 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한국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위기감 속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참석은 적어도 야권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야권은 연일 "평창 올림픽이 아닌 평양 올림픽"이라며 공세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집단에게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평화를 구걸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인식"이라며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는 오만방자한 북한의 체제선전에 판을 깔아주는 것이 진정 평화올림픽이냐"고 물었다.

    아울러 "북한의 건군절 핵퍼레이드 취소를 요구하고 약속파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문재인 정권은 하루라도 빨리 평양올림픽을 평창올림픽으로 돌려놓기 바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