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보 수집 시 ‘무관용의 원칙’ 적용 엄포…인사카드에서 ‘고향’ 지울 것
  • ▲ 지난 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서훈 신임 국정원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서훈 신임 국정원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 훈 신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가진 취임식에서 국내정보 담당관 제도를 즉각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국내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이 국가정보교류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배포한 보도자료 등에 따르면,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식에서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될 것이고, 규정과 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응분의 조치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서훈 국정원장은 이어 “모든 인사카드에서 출신지(고향)를 지울 것”이라고 밝히고 “이제 국정원에서 지연·학연은 사라지고, 철저하게 능력과 헌신만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서훈 국정원장은 “우리는 필연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상처 없이 다시 설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며 국정원 요원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정책노선에 부응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국정원의 정치개입 단절 및 개혁 실현을 위한 획기적이고 단호한 조치의 필요성에 따라 (국내정보관 제도 폐지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서훈 국정원장은 이날 ‘국정원 발전위원회’를 출범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국정원의 중장기 발전과 정보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만드는 기구라고 한다. 여기에는 현직 국정원 요원과 전직 요원, 외부 전문가까지 포함될 것이라는 게 국정원 측의 설명이었다.

    서훈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내정보 담당관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제 국정원 요원들은 정부 부처 및 공공기관, 대형 언론, 주요 시민사회단체, 주요 산업과 기업 등의 동향을 알 수 없게 됐다.

  • ▲ 구글 어스에 노출된 국가정보원 청사. 앞으로는 이 같은 '정보 노출'이 봇물 터지듯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구글어스 관련화면 캡쳐.
    ▲ 구글 어스에 노출된 국가정보원 청사. 앞으로는 이 같은 '정보 노출'이 봇물 터지듯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구글어스 관련화면 캡쳐.


    국정원의 국내정보 담당관 제도 폐지는 일견 “정권에 휘둘리는 국정원의 독립성 확보”처럼 보이겠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을 대입해 보면 앞으로 정부는 각 지방 토호 세력에 의한 조직적 범죄나 비리, 주요 업계 기업들 간의 불법적 사업행위, 언론계의 정치 개입 및 담합 행위, 시민사회단체로 위장한 반국가 세력들의 동향, 각 대학들의 각종 불법·비위 행위 등을 파악할 능력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겠다”며 국내정보 담당관을 없앴지만, 여전히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토호 세력과 지자체, 일부 공안기관끼리의 결탁, 일부 산업계에 존재하는 ‘정치력을 배경으로 한 사업 추진 및 담합’, 자칭 ‘시민사회단체’의 비호 아래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불법체류자 커뮤니티와 이들 속에 숨어 든 해외 첩보기관의 공작 등은 국내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면 알 방법이 없다.

    또한 정부 부처 및 지자체 간의 대립과 부처 이기주의, 국내에서 암약하는 해외첩보기관의 활동 등을 사전에 파악하는데도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국내방첩 및 대공수사능력이 크게 약화되는 것과 함께 정보 부족 때문에 민감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첩보기관 간의 교류·협력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 국정원에 별다른 정보가 없을 경우 해외첩보기관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해외첩보기관은 국정원을 농락하며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와 국내의 구분이 거의 사라진 첩보세계에서 ‘반쪽짜리 첩보’만을 가지게 된 국정원이, 국내 정보를 많이 보유한 해외 첩보기관과 협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민감한 정보를 제공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정보원은 ‘국가정보교류원(Nationa Intelligence Exchange Service)’이 될 것이라는 것이 우려의 핵심이다.

    국정원 국내정보 담당관들이 사라진 자리에 '정보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국내 정치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정원 국내정보 담당관들이 하던 업무와 유사한 활동이 가능한 기자, 전직 경찰, 외국 첩보기관 협력자 등이 '불법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