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사 흔들며 국민의당 중진 '압박', 경남도지사로는 정의당 '손짓'
  •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를 찾아 국민의당을 예방한 자리에서 협조를 당부하자, 표정이 굳어있던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비로소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를 찾아 국민의당을 예방한 자리에서 협조를 당부하자, 표정이 굳어있던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비로소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공석이 된 전남도지사와 경남도지사, 국토의 남단에 해당하는 두 도지사 자리를 양 날개로 삼아 원내안정의석 확보의 꿈을 활짝 펼치려는가.

    문재인정권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현역 광역단체장인 이낙연 전남지사가 지명됨에 따라, 이러한 인선의 배경에 깔린 정치적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직접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한다"고 발표하며 "이낙연 총리후보자의 지명은 호남 인재 발탁을 통한 균형 인사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낙연 총리후보자는 직후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올해 초에 대통령이 광주에 왔을 때 '유세 과정에서 많이 말했던 내용과 일치가 되도록 호남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하겠다'고 했다"며 "'이 지사를 국정의 동반자로 모시고 싶다'는 말씀을 주셨다"고 설명했다.

    이낙연 총리후보자가 언론인 출신의 전직 4선 의원으로 도지사도 역임하는 등 언론·입법·행정 등 다방면에서 훌륭한 자질을 갖췄지만, 인선의 우선 배경으로는 그가 전남 영광 출신의 호남 인사라는 것이 고려됐다는 뜻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지 한 달만인 2013년 1월 24일 김용준 총리후보자를 지명했지만 '장고(長考) 끝의 악수'처럼 낙마했고, 결국 2월 8일에야 정홍원 총리후보자를 새로 지명해 대통령 취임식까지 치른 뒤인 2월 26일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았다는 점에서 볼 때, 전광석화와 같이 당선 다음날에 '호남 인사'를 총리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정치적 묘수로 해석된다.

    일단 호남 인사가 총리후보자로 지명됐기 때문에 호남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국회 인사청문과 임명동의 과정에서 반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지난해 4·13 총선과 올해 5·9 대선을 일관하며 국민의당이 주장했던 것이 노무현정권의 호남 인사 홀대론인데, 애써 지명된 호남 출신 총리후보자의 낙마를 시도하게 되면 논리의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지난해 8월, 호남 출신인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이정현 대표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개각에서 2명만 호남 출신이 입각했어도 국민의당은 죽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만큼 호남 민심이 지역 출신 인사의 입각을 바라는 상황에서 '호남 총리' 인준을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 자폭 행위가 된다는 분석이다.

    이낙연 총리후보자가 구(舊) 민주계 정당의 계파 분류에서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날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를 단행한 상황에서,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으로 손학규 전 대표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노무현정권에서 이명박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됐던 시기에 통합민주당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는 것도 강점이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후보자가 손학규 전 대표와 워낙 가까운 사이라 인준에 반대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를 찾아 정의당을 예방한 자리에서 노회찬 원내대표와 함께 파안대소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를 찾아 정의당을 예방한 자리에서 노회찬 원내대표와 함께 파안대소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손학규 전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개인적으로 이낙연 후보자와 친하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라면서도 "총리후보자 지명이 발표됐는데, 총리 인준은 하루 빨리 해결해줘서 국정을 안정시키는데 국민의당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19석 더불어민주당에 40석 국민의당이 결합하면 벌써 원내 과반의석을 넘게 된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적용을 받는 법안 처리와는 달리, 총리후보자 임명동의 등 인사 사항은 단순 과반수로도 의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낙연 총리후보자 지명의 정치적 의도를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전남 함평 출신의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장관, 전남 장성 출신의 김효석 전 의원 등 '호남 출신 전직 의원'들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굳이 현직 광역단체장을 차출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른정당 오신환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국민통합을 위한 지역 안배 차원에서 호남 출신인 이낙연 총리후보자를 지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현직 광역지자체장 차출에 따른 도정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적절성에 대한 의문은 피할 수 없다"고 의아해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던 호남 쟁투(爭鬪)에서 민주당이 일시적인 '힘의 우위'를 보여준 상황"이라며 "재선 도전이 능히 가능하던 이낙연 지사를 총리로 차출해, 차기 전남지사 자리를 공석으로 비움으로써 국민의당을 압박하는 포석"으로 해석했다.

    국민의당은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권역에서 이번 5·9 대선 득표율이 저조함에 따라 뒤숭숭한 분위기다. 향후 당의 수습 방향에 달려 있지만, 이것이 원만치 못할 경우에는 내홍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상황에서 전남도지사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국민의당 중진의원들의 이탈을 유인하고, 군수·도의원·군의원 등 출마 희망자들의 동반 이탈까지 유도함으로써 호남에서 국민의당의 조직 기반을 붕괴시키는 것까지 노리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장현 (광주광역)시장도 재선 도전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호남의 핵심인 광주·전남에서 민주당 현역단체장의 재선 도전이 불가능해지면서 자리가 공석으로 나오면, 국민의당에서 흔들릴 사람들이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낙연 지사의 총리후보자 차출로 공석이 된 전남도지사 뿐만 아니라, 5·9 대선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출마하면서 먼저 공석이 됐던 경남도지사 자리도 문재인정권의 향후 원내안정의석 확보 전략에서 하나의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남도지사의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의 연합공천이 가능하다는 설이 지역 정가에 파다하다. 경남 권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정의당 소속 3선 의원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에 도전장을 낼텐데,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이 후보를 연합공천할 것이라는 설이다.

    이렇게 되면 경남도지사를 촉매제로 삼아 민주당과 정의당이 원내에서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남 총리후보자'를 내세워 국민의당 40석을 '강제 연대'로 끌어들이고, 6석 정의당과는 우호적 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여소야대가 펼쳐지는데, 새 대통령이 원내에 우호적 안정 의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정가의 초미의 관심사였다"며 "가장 당선이 유력한 대세 후보였던 문재인 캠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을텐데, 총리후보자의 지명으로 그 전략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