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법원보다 배상액 몇 배 이상 높아질 것” 전망
  • ▲ 지난해 12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검찰수사관의 품에 기댄 채 법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지난해 12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검찰수사관의 품에 기댄 채 법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지난달 끝난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대한항공이, 이른바 ‘땅콩 회항’의 당시 견과류를 제공한 승무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될 처지에 놓였다.

    특히 해당 승무원이 국내가 아닌 미국 뉴욕의 퀸즈 지방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미국의 민사소송절차에서 흔히 다뤄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법리가 이번 사건에서도 적용될지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만약 미국 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면, 조 전 부사장 등이 부담해야 할 배상금은 국내의 경우와 비교할 때, 10배 이상 높아질 수도 있다.

    조 전 부사장 등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땅콩 회항’ 당시 승무원 중 한 명인 김모씨다.

    김씨는 당시 조 전 부사장에게 문제의 견과류 서비스를 제공한 당사자로, 지난 1월 열린 조 전 부사장에 대한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상처 입은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씨는 소장에서 “조 전 부사장이 비행기 안에서 자신을 밀치고 때리고 위협했으며, 귀국 후에는 거짓말을 강요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측의 소장내용은 조 전 부사장의 범행이 악의적으로 이뤄졌고, 죄질 역시 불량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김씨가 국내가 아닌 미국의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그 배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인들은, 미국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라 함은, 가해자가 악의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 보통의 경우보다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수 십 배에 이르는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인정하는 제도다.

    우리 대법원도 지난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제도 도입 여부를 논의했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영국과 미국 등 영미법계 법원이 인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1992년 일어난 이른바 ‘맥도널드 소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맥도널드 매장에서 49센트에 커피를 구입한 할머니가, 뜨거운 커피에 화상을 입은 뒤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맥도널드는 결국 이 할머니에게 64만 달러를 배상했다.

    항소심에서 기각되기는 했지만 2000년 미국 마이애미 법원의 담배소송 판결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 사건은 흡연자들이 ‘Light’(라이트) 표시 담배가 보통담배보다 덜 해롭다고 믿도록 기만했다며, 미국의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이다. 당시 마이애미 법원은 미국의 메이저 담배회사들에게 1,270만 달러의 보상적 손해 배상금과, 무려 1,450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미국 법원이 말하는 보상적 손해배상금은 우리 법제가 인정하는 손해배상과 거의 같다.

    원래 이 제도는, 사적인 영역의 손해배상 제도에 형벌 중 하나인 벌금의 기능과 역할을 접목한 것으로, 1760년대 영국에서 공무원의 악의적 불법행위를 막고자 도입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반독점규제법, 소비자보호법 등 200여 개의 법률이 이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연방 대법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금액 범위와 관련돼, 실손해 배상금의 4배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만약 미국 법원이 조 전 부사장의 행위를 징벌적 손해배상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본다면, 배상금액은 국내의 경우와 비교할 때 적어도 몇 배 이상 높아진다.

    맥도널드 소송에서 볼 수 있듯, 가해자의 악의적 불법행위 인정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용을 받을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영미법계 국가 법원이, 개인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상당히 높게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관측은 설득력이 있다.

    김씨가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낼 자격이 있는지 여부도 관심이 높지만, 손해배상의 원인이 된 ‘땅콩 회항’이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김씨가 미국 뉴욕의 지방법원에 소송을 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소송을 낸 김씨는 이달 18일까지 병가를 신청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