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선 알 수 없고 하와이에선 알 수 있는 것
  • ▲ ⓒ윤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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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이 사람을 알기 위해 18명의 대한민국 대학생이 9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를 찾았다. 대한민국에서 12년간 교육을 받고 대학생이 된 이들은 이승만이 누군지 정확히 몰랐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가 대학생들의 대답이다. 

    기자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했던 2011년, 대한민국 건국일이 1948년 8월15일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성대모사를 하던 희극인 최병서의 입에서 처음 들었다.
    2012년 2월13일 <뉴데일리>에 입사해 (사)건국이념보급회가 매달 3번째 목요일에 주최하는
     '이승만포럼'을 취재하면서 처음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았다. 

    (사)건국이념보급회는 지난해부터 하와이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와 이승만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하와이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행사를 시작했다. 대상은 대학생들이다. <뉴데일리>와 국가보훈처가 후원하고 부족한 경비는 학생들이 직접 부담한다. 지난해는 15명이, 올해는 18명이 참가했다. 이 행사는 대한민국의 대학생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알려면 하와이를 찾아야 한다고 판단한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이 기획했다. 

    이승만 박사는 25년간 하와이에서 살았다. 1903년 도착한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정착을 시작했을 1913년 38살의 이승만도 하와이에 정착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한반도를 두고 패권 전쟁을 벌인 결과 일본이 한반도의 주인이 됐다. 젊은 시절 양반과 상놈이 존재하던 대한제국에 반대했던 이승만은 일본의 침략에도 극렬한 분노를 표했다. 대한제국의 고종이 이승만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한성감옥에 집어 넣은 것 처럼 일본도 이승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야 했던 이승만은 하와이를 선택했다. 1902년 한인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파인애플 농장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상놈과 양반이 존재하는 대한제국을 떠났다. 1904년까지 7천5백여명의 한인들이 노동이민을 떠났다. 이승만은 한반도가 아니면서 한인들의 가장 많이 모여살던 하와이로 떠난 것이다. 하와이에 먼저 정착한 한인들도 이승만의 합류를 환영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학교와 나이든 한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만들었다.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들의 자녀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부모가 농장에서 일하면 늘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승만은 한인학교를 세웠다.
    부모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교육의 중요성을 알렸다.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번 돈의 일부를 자녀 교육비로 사용하도록 설득했다. 한인학교에 나간 학생들은 한글을 배웠고 역사를 배웠다.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함께 가르쳤다. 나라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게 교육했고 나라가 없는 서러움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려줬다.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한 1세대 한인들은 노동력을 금방 상실했다. 이승만이 도착했던 1913년은 1세대 이민자가 하와이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은 해였다. 노동이민이었기에 장년층이 많았다. 노동력을 잃은 한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이승만이 만들었다. 

    하와이에서 이승만이 한인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는 단 한 권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멀리 떨어진 하와이에는 이승만의 업적이 곳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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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호놀룰루시에 위치한 알리올라니(ALI'IOLANI) 초등학교, 이곳은 이승만이 만든 한인학교다. 1918년 이승만이 월 60달러를 내며 임대했던 이 학교는 현재 그대로 초등학교로 남아있다. 알리올라니 초등학교는 현재 300 여 명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다. 더 이상 한인학교는 아니지만 이 학교를 9년째 책임지고 있는 랜 미야모토(LEN MIYAMOTO)교장은 이승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랜 교장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학교의 역사를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랜 교장은 이승만 사진을 대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방문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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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놀룰루시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 요양시설인 '한인 양로원(Korean Care Home)' 입구에는 이승만의 사진이 있다. 1924년 이 양로원을 설립한 이승만을 기억하고 있는 한 직원은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에게 이승만은 좋은 지도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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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 하와이에서는 많은 일을 했다. 
    학교를 세우고 양로원을 짓고 교회를 만들었다.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하와이 한인 사회에
    이승만의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 대통령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을 통해 그의 업적을 알게됐다. 

       - 한인 양로원 직원


    [하와이=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