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 잘 써야 藥

      여야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로 초점을 모으고 있다. 사전적으로 보면 ‘경제민주화’란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로부터 경제적 민주주의로 확대돼야 진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경제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소비자 선택 등)‘이 시장경제의 선기능(善機能)을 담보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는 사리사욕이 초래하는 부(富)의 독점, 실업, 저소득층의 구매력 감퇴(빈곤)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보이는 손)가 나서서 그것을 시정하고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의의 사회주의자들 뿐 아니라 비(非)사회주의자들(예컨대 폴리아니, 마틴 루터 킹)과 비스마르크 같은 반(反)사회주의들까지도 그런 필요에서 국가개입을 통한 빈민 구제에 나선 바 있다. 대안으로는 독점규제, 주요물가 통제, 복지제도 등 여러 대책들이 나왔다. 더 나아가선 ‘노동자 자율경영(worker's self-manegement)론’ 같은 적극적 대안 모델도 주장된 바 있다.

      이런 대책들을 통해 다수를 내쫓는 민주주의(배제적 민주주의, exclusive democracy)를 내포적 민주주의, 즉 다수를 끌어안는 민주주의(inclusive demoracy)로 바꿔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유럽의 경우 그런 정책들은 그 나름의 기여(복지국가)를 한 반면에 결과적으로 국가재정 파탄, 생산력 감퇴, 근로윤리 쇠퇴, 기업의 부실, 일자리 감소를 불러오기도 했다. 러시아 공산주의는 아예 자멸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온 반대현상이 마가레트 대처, 레이건 시대의 신자유주의였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날엔 “월가를 점거하라”라는 격렬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래저래 다 문제가 있는 셈이다.

      이런 근현대사의 실험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뭐니 뭐니 해도 시장을 기조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때때로 불거지는 ‘시장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일정범위 안에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시장을 위축시키거나, 사적 소유를 폐지, 적대하거나, 기업의욕을 둔화시키거나, 경쟁을 폐기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경제민주화’란 화두가 그런 역사적 교훈을 심사숙고 하지 않는 채, 너무 정쟁화 돼있다는 점이다. 범좌파는 다분히 증오심과 ‘타도’와 ‘복지=모두 공짜로’란 정서에 사로잡혀 있다. 여권은 “나도, 나도 해줄 게” 하는 식으로 허겁지겁 남의 뒤 꼭지 쫓아가느라 정신이 없다.

      더군다나 선거가 코앞에 닥쳐있다. 여건 야건 눈에 보이는 게 없을 판이다. 이런 판에 ‘시장과 국가’의 관계설정이라는 막중한 대사(大事)가 도마 위의 횟감처럼 다뤄지고 있는 모습이이다. 위험천만한 노릇이다.

      작금의 횟감은 대기업이다. 여야가 다투어 대기업을 공적(公敵)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기업이 하는 양태에 고쳐야 할 문제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대기업을 악(惡) 자체로 설정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그래서인지 조선일보는 다보스 회의에서 나온 ‘신자유주의 자성론(自省論)’을 크게 기사화 하면서도, 사설을 통해서는 “재벌개혁은 경쟁력 죽이기 아닌 오너 독단 견제로”라는 주장을 폈다. 균형감각을 갖자는 제안인 셈이다.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견제하고 출총제를 만들고 하는 등등의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정치가 정치인 이상에는 여러모로 논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적실성, 합리성, 절제, 한계를 뛰어넘거나 ‘대기업=공적(公敵)’이란 ‘증오의 정치’로 흐를 경우엔 대기업이 지금까지 선도해 온 성취를 큰 부분으로 하는 우리 체제 전반을 흔들 수도 있다.

    발전국가의 시장경제는 정밀기계와 같다. 그것을 선무당 식으로 다루진 말아야 한다. 자신이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그들을 껴안는 대책은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행태 중에서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다만 그런 ‘경제민주화’ 화두가 미움과 지나침과 투박스러움, 그리고 “엎자, 깨버리자” 세태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