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폭행당한 교사, 고소조차 못하고 '속앓이''체벌금지' 올가미...'폭력' 눈감고 '선도 대상'으로
  • 지난해 수업 시간 도중 남학생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입원까지 했던 서울시 A고등학교 교사 최모(29·여)씨는 요즘 한숨 돌린 기분이다. 사건 당시, 2학년이었던 가해 학생이 이번에 수능을 마치고 학교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적 상처는 물론 정신적 충격까지 상당했던 최 교사는 가해 학생이 당연히 ‘퇴학’ 당할 것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1개월 ‘정학’에 불과했고 학생은 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를 다녔다.

    학교 측에서 서로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해 함께 수업을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복도에서나 운동장에서 간혹 스칠 때면 불쾌한 기분이 영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최 교사는 “정학 처분을 알게 됐을 때 사실 ‘형사 고소’까지 생각했었다”면서도 “하지만 학교 측에서 교장 선생님까지 직접 와서 ‘학생 미래를 생각해서도, 학교 이미지를 위해서도 그런 일은 참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포기했다”고 당시 마음을 전했다.

  •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금지를 공포하는 모습.ⓒ연합뉴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금지를 공포하는 모습.ⓒ연합뉴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교실 붕괴’, ‘교권 추락’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선 교사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체벌 금지’ 등 제도적 변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그보다 상위법인 ‘학교폭력특별법’ 부터가 허점투성이라는 불만도 많다.

    무슨 말일까? 같은 폭행 사건이라도 학생이 학생을 때린 것과 학생이 교사를 때린 것은 처벌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후자의 경우 처벌이 훨씬 더 무거워야 함에도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것이 문제다.

    만약 교내에서 학생간의 싸움이 일어날 경우 이는 ‘학교 폭력’으로 규정돼 해당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게 된다. 하지만 학생이 교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면 이는 ‘폭행’이나 ‘폭력’이 아닌 ‘선도의 대상’으로 바뀐다.

    폭행과 선도의 대상은 그 처벌의 정도에 있어 차이가 크다. 폭행으로 규정되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구성되고 여기에는 학부모, 교사,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또 가해자가 ‘형사적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징계를 결정하게 된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학부모 양 측이 함께 위원회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면 교사들로만 이뤄진 학교선도위원회가 열리고 절도 사건이나 두발, 복장불량, 지시 불이행 등 학교선도규정으로 분류돼 다소 경미한 징계를 받게 된다. 피해 교사는 위원회에 참여조차 하지 못한다. 학생 징계에 피해 교사의 감정이 이입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물론 피해 교사가 가해 학생을 형사 고소를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동료교사가 이를 말리거나 학교 이미지 추락을 우려한 학부모 반발에 부딪혀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생에게 폭행당한 교사는 억울해도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A 고등학교 교무부장은 “학생에 의한 교사 폭행 사건은 해당 교사와 학교가 직접 나서 수습하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숨기는 게 관행”이라며 “피해 교사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오히려 학교 측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면서 (가해 학생에게)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교육청 등 교육당국은 진상 조사와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 학교 측에서는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교육활동과 관련 분쟁을 조정하는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 교육활동보호전담변호인단 설치 등의 내용이 담긴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법’ 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무너진 교권 속에서 교사들이 맞아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학교에서 살고 있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