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⑨  

     추웠다. 코트 깃에 머리를 묻고 털목도리까지 둘렀지만 바람은 칼날처럼 피부를 베고 지나간다.

    밤 10시쯤 되었을 것이다. 수원 성 밖의 민가에는 불이 거의 꺼졌고 거리의 인적은 진즉 끊겼다. 나는 민가의 흙 담장에 몸을 붙이고 서서 앞쪽을 살피고 있다.

    1월 하순, 수원교회에 강연을 내려온 길이었다. 이박삼일 일정이었으므로 내일 상경할 예정이다. 기다린 지 30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온몸이 다 얼었다고 생각될 때쯤에 앞에서 어른거리는 인기척이 나더니 곧 양성삼이 다가왔다.

    「이야기 했습니다. 가시지요.」
    다가 선 양성삼이 서두르듯 말한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냐고 의심하면서 꼬치꼬치 묻더니 박사님 이름을 대니까 부인이 반색을 하는구만요. 정기준씨가 박사님 이야기를 자주 했답니다.」
    「아, 그런가?」

    나는 반가워서 추위도 잠깐 잊었다. 앞장 선 양성삼이 길을 건너 옆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람 둘이 겨우 나란히 걸을만한 골목은 먹물 속처럼 어두웠다. 나는 지금 보름쯤 전에 오산 교외에서 총살된 독립군 유가족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날 처형된 여섯명 중 맨 처음에 사살당한 양복쟁이, 군중을 향해 일본놈 종이 되어서 자자손손 살아가라고 저주를 퍼붓던 정기준의 가족을 말한다.
    내가 수원의 믿을만한 교인 양성삼한테 그 날 처형당한 상황을 말해주고 그 양복쟁이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더니 닷새만에 연락이 왔던 것이다.

    양성삼이 멈춰선 곳은 골목 안쪽에서 두 번째 집이었다. 반쯤 열려진 싸립문 안으로 들어선 양성삼이 힐끗 나를 보더니 좁은 마당을 건너 마루 앞에 섰다. 방에는 희미하게 등불이 비치고 있다.

    양성삼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나서 말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미리 말을 해 놓은 터라 나와 양성삼은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두 여자가 서 있었는데 하나는 중늙은이였고 하나는 젊다. 서른살 안팍이다.

    내가 먼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제가 이승만입니다. 정기준 의사 가족을 뵈러 깊은 밤에 실례를 합니다.」
    「앉으시지요.」

    마주 인사를 한 중늙은이가 자리를 권하더니 옆쪽에 앉은 젊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며느리올시다.」
    며느리는 잠자코 시선만 내린다. 호롱등불에 비친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다.

    깊은 밤이었으므로 내가 서두르듯 말했다.
    「제가 정의사 돌아가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정의사의 모습은 평생 제 머릿속에 간직될 것입니다. 어머님은 장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가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방바닥에 놓았다. 이것은 이상재는 물론이고 주상호, 질레트, 해리슨, 언더우드와 기석한테서까지 모은 부의금이다. 미화와 일본 돈이 섞여 있었지만 3백불 가깝게 되었으니 양식을 산다면 다섯 식구가 1년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이걸 드리려고 이 추운 겨울날 한성에서 이곳까지 온 것이니 부디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어렵게 왔다는 걸 강조해야 거절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방바닥에 두 손을 짚고 두 여인한테 절을 하고나서 몸을 일으켰다. 두 여인이 서둘러 따라 일어났는데 벌써 젊은 여인의 볼은 눈물 줄기가 만들어져 있다.

    「나리, 감사합니다.」
    몸을 돌린 내 뒤에서 늙은 여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