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번째 Lucy 이야기 ④  

     최영선이 가져온 이승만 암살 작전에 대한 자료는 내가 앞으로 읽을 수기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 혼란기가 있었나요?」
    최영선과 헤어진 우리가 다시 커피숍 의자에 앉았을 때 내가 물었다.

    내 한국사 공부는 1910년 10월 10일 이후부터 거의 백지 상태인 것이다.

    그때 옆에 앉은 고지훈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가장 격심한 혼란기였습니다. 남과 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한데다가 공산주의 세력이 남북한 전역에 퍼져 있었으니까요.」

    나는 시선만 주었고 고지훈의 말이 이어졌다.
    「북한은 이미 스탈린과 김일성에 의해 공산주의 체제로 굳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극심하게 분열된 상황이었지요. 공산당 세력과 미군정청에 붙은 세력, 좌우합작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민족주의 세력과 반공을 앞세워 남한만의 단독 정부부터 수립하자는 이승만 세력까지 말입니다.」

    그리고는 고지훈이 길게 숨을 뱉는다.
    「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세운 것에 대한 비판을 지금도 받고 있지요.」

    나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내막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가 1백년 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과정은 생생하다.
    왕은 폐위되고 지배 계급은 일본인이 되어 조선 민중은 그야말로 종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백성들은 배부르고 등 따스면 누가 상전이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했던가?
    일본국 지배를 받으면서 무능한 왕조, 탐관오리의 꼴을 안보게 되어 낫다고 여기는 조선 백성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고지훈이 입을 열었으므로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루시양, 이승만 수기는 어디까지 읽었습니까?」
    「1910년 10월 10일 오후 8시.」

    내가 외우고 있었던 연월일을 술술 말했다. 눈만 껌벅이는 고지훈을 향해 내가 말을 이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이 남대문역에 내린 장면까지요. 숫자가 10이 세 번 겹쳐서 외우기 쉬웠어요.」
    「그렇군요.」

    고지훈이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보았다.
    따뜻한 시선을 본 순간에 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몸이 뜨거워진 느낌이 든다.

    다시 고지훈이 말했다.
    「이승만은 2년도 안되어서 다시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리고는 33년 동안이나 해외에서 떠돌지요. 38세에 떠나서 71세가 되었을 때 돌아왔습니다.」

    엄청나게 긴 기간이다.
    그리고 이승만의 수명이 길다. 1965년에 하와이에서 숨을 거두었다니 91세에 운명했다.

    이승만의 부친 이경선이 태산의 묘 앞에서 대독(代讀)시킨 내용대로 태산의 수명까지 대신 가져갔기 때문일까?

    내가 손을 뻗어 고지훈의 손을 쥐었다.
    「고, 이승만 수기를 읽으면서 느낀점 중 하나가 있어요. 그것이 뭔지 말해줄께요.」

    고지훈의 시선이 잡힌 제 손으로 옮겨졌다. 그랬더니 손가락을 펴 내 손을 깍지 껴 듯 잡는다.
    내가 말을 이었다.
    「흐르는 시간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보았다. 마치 흐르는 시간을 보는 시늉이다.
    깍지 낀 고지훈의 손에 힘이 가해졌고 내가 한마디씩 말했다.

    「천천히, 그러나 끊기지 않고 흐르는 시간, 그것이 역사가 되는군요. 난 지금 이승만이란 강 위에 떠있는 배 같아요.」

    그렇다. 이승만은 나에게 거대한 강처럼 느껴진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