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물쩍 ‘진보’정당으로 전환한 민주당 

                                                              양   동   안 

    3일 개최된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하여 두 가지 큰 결정을 했다.
    하나는 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의 새 강령을 채택하는 것이다. 흥미본위로 보도하는 신문과 방송들은 주로 당 대표 선출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지만,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새 강령의 채택이다. 정당의 강령이 어떤 내용이냐 하는 것은 당 대표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당의 진로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3일의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민주당의 새 강령은 사상적 지향에 있어서 종전의 강령 내용과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종전의 ‘중도개혁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진보적’ 정책요소들을 많이 도입했고,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종전의 ‘민주·개혁·번영·통합·평화·환경·행복’에서 ‘민주·자유·복지·평화·환경’으로 변경했다. 또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종전의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서 ‘인간중심 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로 바꾸었다.  

    ‘중도개혁주의’를 삭제하고 ‘진보적’ 정책요소들을 많이 도입한 것은 민주당이 우리나라에서 대립하고 있는 두 사상진영인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서 중간의 입장을 취하려는 노선을 버리고 ‘진보진영’ 쪽으로 기울어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 리스트를 천명하면서 종전의 리스트에서 삭제한 ‘개혁·번영·통합’은 국가의 효율적 운영과 경제적 번영 및 국민단합과 연결된 우경적 가치들이다. 민주당이 새 강령에서 그런 가치들을 삭제한 것은 향후 민주당이 그런 우경적 가치들을 중요시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종전의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서 ‘인간중심 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로 변경한 것은 향후 민주당이 경제적 효율성과 경제성장을 희생시키더라도 저소득층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과 같다. 이는 민주당의 경제정책 노선이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중간노선을 이탈하여 사회민주주의 방향으로 기울어지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강령 변화는 민주당이 전술적 이유에서 노골적으로 천명하지 않았지만 그 당이 사실상 ‘진보’ 정당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어물쩍 이루어진 민주당의 ‘진보’ 정당으로의 전환은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담대한 진보’, ‘똑똑한 진보’, ‘실천적 진보’, ‘더 큰 진보’ 등을 외쳤던 것에 비추어볼 때, 그리고 이제까지 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정당들에서 이루어진 ‘젊은 피 수혈과정’과 민주당 중앙당부의 인적 구성 등에 비추어볼 때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당 강령과 함께 채택한 「민주당 선언」이 ‘민주진보세력의 연대와 통합’ 및 ‘획기적인 당의 체질 개선과 자기 혁신’ 등을 천명한 것에도 확인된다.  

    민주당이 지향하는 ‘진보’라는 추상적 용어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이냐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정치용어법에서 ‘진보’는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노선이다. 또한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라면 자유민주주의노선이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진보’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은 이처럼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지향을 가진 ‘진보’ 정당으로 전환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물론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심지어는 민주당 소속의 일부 국회의원들조차도 민주당의 그러한 전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민주당을 자유민주주의 정당으로 착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정치의 희비쌍극(喜悲雙劇)의 원인이 조성된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