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27)

     을사보호조약에 의해 일본의 보호국이 된 대한제국은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므로 곧 워싱턴 공사관은 폐쇄될 것이었다. 그러나 대리공사 김윤정은 금의환향의 꿈에 부풀어 있다고 했다.
    일본국에 충성을 바쳐 온 터라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초인 어느 날 오전, 도서관에 앉아있던 나는 다급하게 다가오는 두 사내를 보았다.
    김일국과 독립회원 손두영이다.

    김일국은 열흘쯤 전부터 공사관을 그만두고 독립회원들과 어울려 다니고 있다. 다가선 둘이 말없이 눈인사만 했으므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의 표정이 굳어져 있다.

    열람실을 나온 우리는 현관 옆쪽의 구석에서 마주보고 섰다. 그때 먼저 손두영이 입을 열었다.
    「11월 30일에 민대감이 자결을 하셨다고 합니다.」
    놀란 나는 숨을 들이켰다.

    민대감이란 민영환. 당시에는 시종무관장으로 고종을 최측근에서 모시던 대신.
    그보다도 내가 가장 의지했던 충신이며 애국자. 개혁과 주권 회복 운동의 기수로 삼았던 의인(義人)이 아닌가? 두고온 내 가족의 생계도 보살펴 주고 있는 보호자이기도 했다.

    「아, 아니, 어떻게.」
    말을 더듬던 나는 곧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충신이 자결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때 손두영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대감께선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날 백관을 이끌고 대한문에서 조약 파기를 상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일본군에 의해 강제 해산을 당하고는 갇혀 있다가 풀려 나셨다고 합니다.」
    「......」
    「그러던 중 이완식씨 댁에서 11월 30날 새벽 6시경에 유서 두통을 남기고 칼로 몸을 수차례 찔러 자결 하셨다는 것입니다.」
    「분하다.」
    내가 잇사이로 말했다.

    그 순간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지만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놔두었다. 손두영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지나던 서양 학생들이 우리를 힐끗 거리고 있다.

    손두영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 왔다가 곧 워싱턴으로 옮겨와 지금 3년째 목공소를 운영하고 있다. 조선에서 목수로 일했던 것이 이곳에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때 이번에는 김일국이 말을 이었다.
    「그 다음날 조병세 대감께서도 독약을 먹고 자결을 하셨다고 합니다.」
    조병세는 전(前) 의정대신으로 80 가까운 노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만 있었고 김일국의 목소리에도 울음이 섞여졌다.
    「전문으로 전해온 민대감의 유서를 제가 외우고 있습니다.」

    잠깐 말을 멈췄던 김일국이 턱을 들더니 한마디씩 내 놓는다.
    「국가와 민족의 치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슬프고 분하다. 이제 이천만 민족이 생존경쟁에 패하여 모조리 사라지게 되었으니 이에 영환은 죽음으로써 황은에 보답하고 동포에게 사죄한다.」
    말을 마친 김일국도 소매로 눈을 닦는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두고 망연히 서 있었다.

    민영환은 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고모가 되었으니 고종의 외사촌이 된다. 17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에 군부대신, 참정대신, 외부대신, 탁지부대신 등 요직을 다 거쳤으며 1896년에는 특명전권공사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했고 1897년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년 행사에도 참석하여 외교력도 갖췄다.

    「대감, 장하시오.」
    나는 앞쪽을 향한 채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감의 한을 여기 승만이 품고 있다가 기어코 풀 것이오.」

    그러나 그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내 가슴은 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