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⑦  

     헤이 장관을 만난 후에 나는 민영환 앞으로 보고서를 써서 딘스모어에게 그것을 대한제국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주미 공사관을 통해 보낼 수가 없는 이 기막힌 현실을 탄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휴·딘스모어(Hugh·A·Dinsmore)는 1887년부터 2년 동안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한국통이었고 지금의 알렌 공사는 딘스모어 밑에서 서기관을 지낸 인연이 있다. 대한제국 미국공사관 앞으로 배달되는 외교관 파우치편으로 보고서를 보낸 나는 탈진상태에 이르렀다.

    아무리 고된 일을 했더라고 성과가 있으면 기력이 남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친한파 미국인 몇사람의 인연을 이용하여 자국의 공사관 눈도 피하면서 겨우 장관 면담을 성사 시켰을 뿐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였지만 문득 폭음을 하고 실컷 울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3월에(1905년) 주한 미국공사 알렌이 루즈벨트와 사이가 틀어져 해임되고 모건(Edwin v. Morgan)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나하고도 인연이 깊은 알렌은 친한파다. 루즈벨트의 친일 정책에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났다.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면담은 헤이에게 부탁만 해놓은 상태였으므로 나는 학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영어 해독과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었지만 정규교육을 받아온 동급생들을 따라가려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숙사비와 식비가 전액 무료로 제공받는 장학생이라고 해도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주중에는 대학 근처의 식당에서 그릇을 씻거나 고기 써는 일, 쓰레기 치우는 일을 했고 주말에는 교회에 나가 강의를 해서 기부금을 받았다.

    아카마쓰 영사의 충고대로 나는 대한제국 공사관의 김윤정에게 자주 접촉하여 인간 관계를 쌓았다. 그쪽도 이제는 나를 자주 제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했는데 겉으로는 다정한 친구 사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4월 초순, 어느덧 추위가 가셨고 워싱턴에도 봄기운이 덮여지던 금요일 오후였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은 식당의 음식 찌꺼기를 모아 뒤쪽 쓰레기장으로 나르는 일을 하던 나에게 김일국이 다가와 말했다.

    허리를 편 내 앞에 선 김일국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잠깐 저쪽으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으므로 나는 하던 일을 놔두고 김일국과 함께 창고 옆 한적한 구석쪽에 붙어섰다.

    그때 김일국이 말했다.
    「동지 한명이 경찰서에 잡혀갔는데 밀항해온 처지여서 감옥에 갇혔다가 조선으로 추방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김일국이 길게 숨을 뱉았다.

    「그 동지는 조선에서 일본인 둘을 죽이고 왔기 때문에 현상수배 된 처지입니다. 조선땅을 밟으면 바로 사형을 당하게 되겠지요.」
    「딱하게 되었군.」

    혀를 찬 내가 김일국에게 물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요?」
    「그렇습니다. 가장 활동적인 동지였는데...」
    이를 악물었던 김일국이 말을 잇는다.
    「김윤정의 정보원이 양시우 동지를 찾아낸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 김윤정의 짓입니다. 밀고를 받고 체포되었으니까요.」
    「김윤정이 정보원을 운용하고 있소?」
    「그렇습니다. 자금은 아카마쓰 영사한테서 받습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는 김일국의 얼굴을 우두커니 보았다. 아카마쓰가 나에게 배려해준 일을 말할 필요는 없다.

    문득 모두 아카마쓰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