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31)

    투쟁(鬪爭)의 나날이었다.
    단 하루도 평온하지가 않았고 단 일분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인화문(仁化門) 광장에 모인 군중을 둘러보았다.
    군중 속에는 백정도 있고 상인도 있으며 아녀자까지 끼어있다.

    그리고, 보라. 이 뜨거운 열기를. 지금 백성들은 개혁을 원하고 있다.

    탐관오리에 핍박받고 살아온 지난 세월,
    양반 등살에 허리를 펴지 못했으며 왕조(王祖)의 무능한 정치(政治) 때문에
    이렇듯 외세가 밀려들어와 백성들은 더러운 개떼 취급을 받는다.

    바꿔야 한다.

    나는 주먹을 부르쥐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조선 백성들이여! 시간이 급합니다! 우리는 이 결의를 꼭 관철시켜야 됩니다!」
    「와아!」
    우레와 같은 탄성이 일어났다.

    나는 군중들에게 무능하고 부패한 수구 7대신인 신기선, 이연우, 심재택, 윤용선, 이재순, 심상훈, 민영기의 파면과 개혁파 내각의 성립을 외친 것이다. 임금이 이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한 대한제국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내가 단에서 내려왔을 때 박용만(朴用萬)이 다가왔다.
    「형, 친위대 조 부위(副尉)가 조금 전에 다녀갔는데 곧 개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박용만은 상기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임금이 마침내 우리 뜻을 따랐소.」

    나는 지친때문인지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연일 연설을 하느라고 목까지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임금은 우리가 원했던대로 7대신을 면직시켰고 개혁파 관료인 박정양(朴定陽)과 민영환을 중용(重用)했다. 개혁파 내각을 성립하겠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며칠 후에 산산조각이 났다.

    임금은 지난 7월, 독립협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면직시켰던 수구파의 원흉 조병식을 다시 의정부참정으로 복직시켰다. 또한 면직시킨지 며칠도 안된 7인중 하나인 윤용선도 의정부의정에 임명했다.

    이른바 개화 수구의 절충 내각이다.

    「희망이 없소.」
    남대문 밖 사가(私家)의 사랑채에 모여 앉은 박무익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오후 8시쯤 되었다.
    제법 찬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는 10월 하순이다.
    방 안에는 나와 박무익, 박용만까지 셋이 둘러 않았는데 박용만은 내 은신처를 아는 유일한 동지였다.

    내가 머리를 들고 둘을 보았다.
    그리고는 뱉듯이 말했다.
    「희망이 없어.」
    그러자 내 입에서 쏟아지듯 말이 이어졌다.

    「임금은 그저 제 왕권만을 지키려는게야. 다른 건 안중에도 없어.」

    그때 문밖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리, 재석이가 왔소.」
    「어서 들라.」

    박무익이 말하자 곧 문이 열리더니 사내 하나가 들어와 윗목에 앉는다.
    박무익의 수하 중 하나로 방금 성안에서 돌아온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받은 재석이 입을 열었다.

    「이기동이가 오늘 아침에 회원들에게 각각 5원씩을 식비로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재석이 말을 잇는다.
    「어젯밤에 조병식이가 은밀하게 이기동이를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왕명을 전한 것 같다고 합니다.」

    재석은 황국협회에 심어놓은 간자(間者)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온 것이다.

    이기동은 법부(法部) 민사국장인데 보부상으로 구성된 황국협회의 회장이다.
    따라서 황국협회는 임금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집안이며 오직 독립협회에 대항시키기 위해서 지난 6월 말에 급조(急造)시킨 단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