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이제 환갑을 넘겼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아시아 48개국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민주정치체제는 완성됐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이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국회는 마비되고 국민은 어떤 정당도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불법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그래서 혹평하는 사람들은 한국 정치에는 ‘demo’ 만 있고 ‘cracy’가 없다고 한다.

    국민은 풍요한 대한민국, 민주적인 대한민국, 통일된 대한민국이라는 세 가지 꿈을 이루는 데 정치인과 정당들이 앞장서주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들이 개인과 당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으니 지탄받을 만하다. 제61회 제헌절을 맞이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2의 제헌을 모색하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다. 시민이란 자기 행위의 의미를 알고 그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국민을 말한다. 국민 중에서 시민이 다수가 되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순탄하게 작동하지만 시민이 소수일 때는 파행을 면할 수 없다. 그러니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민주주의의 선결요건이 된다. 더욱이 정치인과 정당 지도자들이 시민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잘 정비된 민주제도일지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정치인들로부터 자기 성찰을 깊이 해야 한다.

    국민모두의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자유’를 지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질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이 원칙이 모든 법과 규정의 제정, 그리고 질서 운영의 준거가 되는 근본규범(Grundnorm)이 될 때 우리는 그 체제를 민주체제라고 한다. 이 규범을 지키려는 마음의 자세가 민주정신이고 국민과 정치인들이 이런 정신을 가질 때 성숙한 민주주의체제가 자리잡는다.

    국가의 의사결정은 전문성, 신속성을 요하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은 그 권한을 전문가에게 선거를 통해 위임하고 있다.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위임받은 전문가의 권한의 준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법을 어기고 직접 다양한 국민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뜻’을 핑계로 헌법질서를 어기는 정치를 하기 시작하면 민주질서는 허물어지고 대중영합주의라는 반민주정치로 전락한다.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국민의 뜻’을 내세우고 대중영합주의를 획책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이다. 정당은 민주질서를 부수는 대중선동(Demo) 대신 질서관리(Cracy)에 주력해야 민주주의가 살아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헌법이고 이 헌법과 헌법에 근거한 법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을 어느 국민이 존중하겠는가. 정치인과 정당 지도자들은 법을 지키는 정치를 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