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주영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 이주영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 ⓒ 뉴데일리

    “좌파의 입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할 원수였습니다. 이 전 대통령 때문에 적화통일을 못이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좌경화된 학계가 이 전 대통령을 죽이다 못해 아예 역사에서 지운 겁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연구에 정통한 이주영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의 ‘이승만 홀대’를 이렇게 짚었다.

    이 교수는 평북 용천 출생이다. 1948년 2월 월남해 서울대, 서울대 대학원 사학과를 나왔고 미국 하와이대와 서강대 대학원에서 미국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이승만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교 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보면 건국 과정은 아예 생략이 되다시피 했어요. 박정희 독재 비판부터 우리나라 역사가 시작됩니다. 누가 봐도 건국과 건국이념이 부정된 좌파 교과서를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겁니다.”

    이 교수는 역사교육에서의 근현대사 왜곡이 심각할 정도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좌파들이 이 전 대통령을 부정하자니 대항마가 필요해 내세운 인물이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김구 선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가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좌우합작파였거든요. 어쨌든 이승만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이 교수는 “지난해 건국 60주년 행사에서 정부 여당과 달리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등 3당 의원 60여 명이 같은 시각 서울 효창공원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광복절 행사를 따로 치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좌파 등은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상해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 박사였습니다.”

    이 교수는 이승만 박사가 곧 대통령에서 탄핵됐다고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전 대통령이 상해에 오니 한심했던거예요. 외교를 통해 독립을 이루려던 이 전 대통령의 소신과 달리 상해 임정은 무력을 통한 독립을 내세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장도 병력도 없이 입으로만 전쟁을 한다니 실망했던 거지요.”

    이 교수는 당시 임정의 이 전 대통령 탄핵에는 독립운동 진영 간의 파벌 싸움도 한 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 전 대통령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건국과 공산화를 막은 점을 꼽았다.

    “해방 직후 남한 정치인이나 지식인 대부분이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이란 허황된 꿈에 젖어있었습니다. 구 소련이 폴란드 등 동구를 위성국가로 만들 때 절대 공산정부부터 세우지 않았어요. 일단 좌우합작 정권을 세운 뒤 좌파의 조직력으로 우파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그들의 전술입니다. 국제정세에 밝던 이 전 대통령을 이 점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국민들이 좌우합작이란 미망에 흔들리고 있을 때 선명한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것은 ‘이 전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 ▲ 이스만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와 서로 존경하는 절친한 사이였다.. ⓒ 뉴데일리
    ▲ 이스만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와 서로 존경하는 절친한 사이였다.. ⓒ 뉴데일리

    “이 전 대통령은 동맹의 중요성을 아는 외교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이끌어 낸 것이죠. 그 튼튼한 안보가 우리 경제의 밑거름이 된 겁니다.”

    이 교수는 6.25 발발 후 신속한 미군 참전에도 이 박사의 개인적 인연이 기여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미 극동군 사령관이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이 박사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어요. 두 사람이 절친한 관계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미 국무부 고문이던 덜레스와는 대학(조지 워싱턴대학)과 대학원(프린스턴 대학)이 서로 엇갈린 동문이에요. 6.25 발발 이틀 전 한국을 찾았던 덜레스가 귀국 전 도쿄 미국 극동군 사령부에 잠시 머물 때 6.25가 터진 겁니다. 두 사람이 곧 의기투합했고, 개전 수 일 만에 미군이 참전하는 극적인 계기가 됩니다.”

    이 교수는 이런 점에서 이 전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란 칭호와 함께 호국대통령으로도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이승만 대통령이 조선일보 창간 40주년을 축하한 친필 휘호 ⓒ 뉴데일리
    ▲ 이승만 대통령이 조선일보 창간 40주년을 축하한 친필 휘호 ⓒ 뉴데일리

    또 다른 업적 중 하나로 이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수호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전쟁의 극한상황에서도 이 전 대통령은 언제나 일정대로 선거를 치렀습니다. 설령 패배가 예상되더라도 어김없었고 국회를 해산시킨 적도, 헌법을 정지시킨 적도 없었습니다.”

    이 교수는 “부산정치파동이라는 무리수를 거쳤던 대통령 직선제 역시 이 전 대통령은 끝까지 고수했다”며 “이 전 대통령은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자유방임을 믿는 ‘제퍼슨적인 자유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와 신념을 이어가려면 이승만을 절대 비켜갈 수 없습니다.”

    이 교수는 “많은 과오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엄연한 뿌리와 토대”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이승만연구회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학술세미나를 열고 거의 매달 콜로퀴엄(그룹토의 혹은 토론회)을 연다. ‘어른’이 없는 오늘 우리 한국인을 위한 작지만 의미 큰 노력이다. 45차 콜로퀴움은 20일 오후 3시 서울 정동제7교회 아펜젤러홀(덕수궁 뒤 배재빌딩 옆)에서 열린다. 김성호 농촌경제연구원 고문이 '이승만의 농지개혁, 그 뒷얘기와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