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쪽'이라 불렸고 '원칙'의 대명사 처럼 여겨졌던 이회창 자유선진당(선진당) 총재가 자신의 이념과 정체성과는 상반되는 창조한국당(창조당)과 손을 잡았다. 이 총재는 6일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문국현 대표와 만나 교섭단체 공동구성에 합의했다.

    의석수 20석 이상이라는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막혀 국회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이 총재는 이를 통해 여러 실리를 챙기게 됐다. 당장 상임위원장 자리 한 두개를 챙길 수 있게 됐고, 국회에 교섭단체 몫의 사무실이 마련된다. 실무자 일자리도 생기고 각 상임위 마다 교섭단체를 대변하는 간사 자리도 얻게 됐다. 향후 국회 활동에서 상당한 제약이 풀린 셈이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이번 결정으로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대선 삼수로 이미 상당 부분 자신의 '원칙의 정치'에 상처를 입은 그였는데 이번 결정은 '이회창 정치'에 또 하나의 오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당은 합의문에 교섭단체를 구성하되 "각자 자당의 정체성에 입각하여 독자적으로 정치 활동을 한다"고 명기했지만 이념의 차가 큰 만큼 정치적 이슈 마다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 문 대표는 "양당의 차이점보다 같이 할 수 있는 점을 봐 달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양당 대변인도 "앞으로 우리가 합당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양당이 서로 비판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장 양당은 정연주 KBS 사장 해임 문제와 청와대의 장관 임명 강행을 두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국회활동 편의를 위해 손을 잡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든 부분이다.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강하게 비판했던 이 총재로선 자신의 이런 행보에 대한 지적에 분명히 답을 해야 하지만 이날 이 총재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이 총재와 문 대표는 합의문에 서명한 뒤 간단한 소감을 밝힌 뒤 바로 자리를 떴다. 회견장에 있던 시간은 10분이 채 안됐다. 이유는 개인 일정 때문이라는 게 대변인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민은 물론 양당 지지자들조차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책임있는 양당 수장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함에도 아무런 입장표명 없이 자리를 뜬 것은 비판의 여지가 크다. 한 기자가 "한 가지만 질문을 받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총재는 외면했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선 "양당 대변인이 회견을 할 것"이라고만 말하고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