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은 요즘 '인적청산' 논란이 한창이다. 대선 참패 '책임론'으로 당 수습은 뒷전이 됐다. "새롭게 태어나겠다"며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합신당은 대선 참패 책임 대상자의 경중부터 따지기 시작했다.

    1차 타깃은 '친노 그룹'이 됐다. 이번 대선 참패가 '노무현 대통령 탓'이란 원인 분석에 당 안팎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친노 그룹 2선 후퇴' 요구는 빗발치기 시작했다. 비노 그룹 일부에선 아예 친노 그룹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사람 조직 노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오충일 대표)는 목소리가 쏟아지며 제1 과제로 '노무현 색깔 빼기'가 꼽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친노 그룹과의 결별이 필수라는 것이다.

    수도권 초·재선 그룹이 '친노 그룹 2선 후퇴'를 주장하자 대표적인 비노 성향 인사인 김한길 의원이 가세했다. 초선 의원 17명은 '17인 모임'을 만들어 친노그룹은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장관을 지냈고 열린우리당에서 의장 및 원내대표를 맡았던 인사들 모두 "2선으로 물러나라"며 한발 더 나아갔다. 여기에 김호진 당 쇄신위원장이 공천 혁명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현역 의원 50여명이 공천 물갈이 대상이 될 것이라 주장하면서 '인적 청산'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총선 때 마다 '인적 청산' 작업은 이뤄져 왔다. 당 이미지 제고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직전 탄핵 역풍으로 쓰러질 뻔 했던 한나라당 역시 당의 중진 의원들을 대폭 물갈이 하며 당 변신을 위해 인적 청산 작업을 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 초선 의원 임에도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중진들의 불출마 도미노를 이끌었다. 이런 인적청산 작업 뒤 한나라당은 비주류에 있던 박근혜 의원을 당의 얼굴로 내세워 위기에서 탈출했다.

    역대 대선 중 가장 큰 표차로 패하는 수모를 당한 통합신당 내부에서 '책임론'과 '인적 청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지금 통합신당의 '인적청산' 작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인적 청산이 '자리싸움'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2월 구성될 새 지도부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공천방향이 달라지는 만큼 이번 '인적청산' 작업이 결국 각 계파간 당권 주도권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성해야 한다"면서 정작 책임지겠다고 손드는 의원은 없다. '인적 청산'요구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요인이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신의 경기 고양덕양갑 지역을 떠나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 수성을구에서 출마하겠다고 밝힌 유시민 의원이 지난 28일 의원총회에서 "이것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하겠다"면서 불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유일하다. 당내 비토세력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유 의원은 이날 발언으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중진들은 '당권'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 있고 초·재선은 '중진 용퇴론'을 내세워 세대교체를 이룬 뒤 주도권을 쥐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용퇴를 고민하던 한 중진 의원은 초선 의원들의 2선 후퇴 요구에 "인생에 대한 모독이라서 더 힘내고 좌절하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들에게도 '불출마'요구가 쏟아졌는데 이 같은 주장에 한 초선 의원은 "개가 웃을 노릇"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당 쇄신위가 가동 중이지만 의원들은 중구난방으로 개별 쇄신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쇄신안에는 '자기 희생'은 없고 상대 진영의 희생만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내놓겠다"던 지도부의 쇄신안은 공전만 하고 있다. 당 관계자들의 불만도 적지않다. 중진 의원들에게는 "몸조심만 할 때는 아니지 않느냐"는, 초선 의원들에게는 "탄핵바람 타고 얼떨결에 배지를 단 사람들이 노무현 탓을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