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자가 되면 오만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래서 강자의 오만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상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당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오만해지면 그들은 주위의 진정한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보고를 받기 거부한다. 필연적으로 참된 정보가 차단되고 정당이나 국가의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올바른 정보로부터 차단된 지도자는 정당의 목적달성을 어렵게 하고 국가경영을 망치기 쉽다. 정당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면서도 겸손하고, 자기반성 성향을 강하게 가지는 인물일 때 그 정당이나 국가는 번성하는 법이다.

    최근 신정아 게이트나 정윤재 게이트로 온 나라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해도 미동도 않던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에 모든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자 국민에게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강자의 오만이 잉태한 임기 말 또 하나의 권력누수 현상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도 범여권의 자살골 행진에 따른 반사이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주춤하던 지지도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과 범여권의 실정(失政)에 힘입어 소폭 상승한 것에 자만해서는 더욱 안 된다. 벌써부터 경선승리에 의한 오만의 짙은 그림자가 이 후보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된 후 주 5일 근무제를 채택한 나라는 있어도, 주 5일 근무제를 한 후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마찬가지로 경선 후 당 화합이 외연확대 보다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식 구조조정을 통한 당의 경쟁력 제고를 꿈꾸고 있는 이 후보와 측근들의 오만은 명백한 ‘인식오류’가 될 수 있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는 말이 있다. 강자의 오만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하고 그 위기를 봉합하는 과정이 지난(至難)함을 우리는 지난 97년, 2002년 두 번의 대선 과정을 통해 비싼 수험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 내에서는 97년, 2002년 체제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어쩐지 불안하다. 소위 과거의 ‘7인방 득세’와 ‘측근 준동’이 ‘논공행상’이라는 미명 아래 다시 머리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0일 경선 이후 원내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당3역’ 인사는 말할 것 없고 경기도당위원장 승리에 이어 서울시당위원장 까지 이 후보 측 초선의원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은 과히 승자독식구도의 결정판이라 할 것이다. 이 후보가 박 전대표와 회동에서 한 말인 이인동심(二人同心), 기리단금(其利斷金)이 무색한 지경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위계질서 없는 한나라당이 되어서야”라고 한 말의 참 뜻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당직이 경선의 전리품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 후보 측이 벌써부터 12월 19일의 대선은 따 놓은 당상이고 내친김에 2008년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조급의식에서 시·도당위원장을 싹쓸이 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오만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오죽하면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이 “입도, 귀도, 눈도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며 은인자중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명직 당직자는 온통 이 후보 사람뿐이니 선출직에라도 최대한 나서 보자”는 그들의 절규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점령군에게 대항하는 ‘자위권’으로 인식될 때 민심은 또 한 번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을 이 후보와 그의 측근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13일 전격 사퇴한 아베 총리의 직접적인 사퇴 원인은 국민의 실망과 불신에 있다. 그는 전후세대 첫 총리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첫 조각 때부터 ‘논공행상’ 논란을 초래할 정도로 측근들을 중용했다. 이것이 정치자금 스캔들과 각료들의 실언 사태로 이어졌다.

    출범 당시 65%에 이르던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고, 야당은 정권 획득의 호기로 보고 중의원 해산과 총선을 요구하며 아베 정권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민심을 잃은 정권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심을 등진 지도자의 쓸쓸한 퇴진의 교훈을 연말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