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론'의 저자로 유명한 토마스 맬더스(T R Malthus)는 1814년 '곡물법(Corn Law)'의 효과를 논하는 글에서 "곡물의 자유무역으로부터 생기는 해악 중에서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한 나라가 외국산 곡물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양만큼 확보하지 못할 위험성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라고 설파했다.(2007. 4. 13, 조선닷컴) 이는 식량안보가 금전적 이익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로 주목할 만하다.

    한편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미국 농무부가 집계한 2006년 세계 곡물수확량은 대략 20억 톤으로서 이는 같은 해 세계 곡물소비량에 비해 5000만 톤 정도가 부족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식량비축량도 1999년의 116일분에서 2006년에는 적정 수준 이하인 57일분으로 크게 줄어들었다.(2006. 9. 3, 연합뉴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갈수록 곡물생산량은 줄어드는 반면 곡물소비량은 늘어나 머지 않아 심각한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안보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국가안보는 군사안보뿐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등의 분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다. 특히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비해 한정된 공간으로 인한 지구적 위기 속에서 새롭게 파생되는 외부의 위협은 군사적 침략에 더해 식량 및 자원 확보 경쟁과 환경 문제라는 새로운 위협이 추가되었다. 이들 위협은 국가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절박한 문제들이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식량의 확보이다. 이제 우리에게 식량안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2005년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9.3%로 사상 최저였던 2004년의 26.8%에 비해 약간 높아지기는 했으나 식량안보를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하루 세 끼 중 두 끼 이상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자유무역협정(FTA)의 계속적인 추진에 따라 농산물 시장의 개방이 더욱 확대될 것이므로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더욱 하락될 것이다.

    게다가 세계는 지구 온난화와 사막화에 따라 기상재해가 빈발하고 그 규모도 대형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같은 개도국들의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나타난 경작지 감소,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 등으로 식량 생산이 큰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다. 특히 우리에게 값싼 농산물의 공급지가 되고 있는 중국이 계속되는 사막화와 산업화로 인해 식량 사정이 악화되는 경우 우리가 받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공업국의 기틀을 다진 영국이 식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국민경제에 유익하다는 자유무역론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1846년에 곡물법을 폐지하고 수입을 늘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주곡인 밀의 자급률이 19%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독일의 해상봉쇄로 식량을 수입할 수 없게 되었던 사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국제분업이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다고는 하지만 농업을 국제분업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식량안보를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는 외국과의 협상에서 국내 농산물 생산자의 보호를 위한 소극적인 방어정책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농업의 선진화를 통해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을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생산정책을 펴는 일이다. 그 핵심은 이제까지 중점을 두어왔던 농산물 생산량의 증대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동시에 경쟁력 있는 품종의 개발에도 주력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양(量)과 질(質)의 병진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농업 선진국 사이에는 식량과 농축산물의 안정적 생산기술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농업생명공학 기술과 농업생물자원 다양성 확보 등과 같은 첨단·실용기술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이 1970년대 식량의 증산기술 개발을 위한 녹색혁명(綠色革命)과 1980년대 안정적 생산체계 구축을 위한 백색혁명(白色革命) 같은 생산량의 증대에 치중해 온 결과이다. 그 결과 생산량의 증대를 위한 품종 개량과 재배 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향후 식량안보는 점차 생산량의 증대 여부보다는 새로운 종자의 개발 여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즉 농업생명공학 기술과 농업생물자원 다양성 확보와 같은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는 곧 종자전쟁(種子戰爭)을 의미하며 그 핵심은 누가 더 우수한 종자를 개발하고 보다 많은 유전자원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인구의 증가에 따라 식량수요도 급증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열악한 재래종자로는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

    결국 관건은 재래종자에 새로운 기술과 자본을 투입하여 우수한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 종자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치열한 종자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IMF를 전후하여 중앙종묘, 홍능종묘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종묘회사들이 대거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간 결과 다국적 기업의 국내 종자시장 점유율도 50%를 넘게되어 종자주권의 상실을 우려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식량위기가 현실적인 지구적 위기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문제를 소홀히 하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과 발언권이 취약해 질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 심각한 위기를 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식량 무기 시대의 도래, 남북 충돌과 같은 긴급 상황, 통일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탄탄한 농업 기반의 확립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식량위기에 대비하여 우리 농업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바로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