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외교 접촉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결의를 채택하기 직전 연이은 한, 중, 일 삼국간 정상회담과 탕쟈쉬엔(唐家璇)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미국 방문을 통한 조율을 거쳐 14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가 탄생하였다.

    지난 주말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의 이행과 관련하여 탕(唐) 국무위원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동북아 순방을 통해 한, 미, 일, 중 외무장관회담이 연달아 개최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회담을 거치면서 관련국 사이에서는 대북제재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가 점차 형성되고 그 양상은 미국-일본과 한국-중국을 축으로 하는 두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2년 10월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던 2차 북핵위기가 4년 만에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 결정적 원인은 미국-일본의 '채찍'과 한국-중국의 '당근'이라는 서로 다른 해법이 대립되면서 국제사회가 균열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형성되고 있는 두 흐름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우선 미국과 중국간 입장차가 두드러진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탕 국무위원은 20일 중국을 방문한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북한 방문이 헛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라이스 국무장관은 탕 국무위원과의 회담 후 "특별히 놀라운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라이스 국무장관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의 확실한 집행을 강조한 반면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관련국들의 냉정하고 신중한 자세를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양상은 향후 대북제재의 강도에 있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 제재 국가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 제재 국가로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낳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중국 인민대의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김정일이 중국의 특사를 면담한 것은 중국의 분노를 완화시킴으로써 중국과 미국의 입장차를 넓혀 전면적인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하고 있다.(2006. 10. 21, 동아일보)

    또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이 점차 미국과 멀어지고 있다. 13일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유엔 안보리의 '적절한 대응'에 합의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을 규탄하는 강력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은 "유엔에 우리 운명을 맡기면 자기 운명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미국의 입장에서 멀어지는 발언을 했다.

    한, 중 양국이 주장하는 '평화적 해결'은 실효성 있는 대북제재를 사전 차단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적절한 대응' 또한 미, 일 주도의 대북제재에 한, 중이 반대한다는 공동노선을 천명한 것과 다름없다. 북한 핵실험은 우리에게 국가의 존망과 사활이 걸린 문제로 북한의 핵포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중국과의 어떠한 합의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은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채택으로 우리나라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라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북한의 절박함과 반(反)테러전을 불사하고라도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미국의 절박함이 서로 충돌하는 틈 사이에 끼이게 된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눈앞에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가 북한을 자국의 안보 위협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맹국과의 공동보조에서 이탈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동맹국의 불신은 가중되고 국가의 생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초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동서고금의 동맹국 사이에 적용되는 동맹의 원리이자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국가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는 명백하다. 일련의 정상회담과 외무장관회담 그리고 중국의 특사활동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 목표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 반면 미, 일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의 강도를 낮추도록 중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향력은 극대화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공동보조에서 이탈하고 중국의 입장에 동조한다고 해서 과연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이 우리나라에 대한 명백한 군사적 도발 행위이자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구도에 본질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안이하게 북한 핵문제를 다뤄 왔다. 그런 노무현 정부가 또다시 안이했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외교안보 전략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는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 해법으로 "북한에 대해 잘못된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2006. 10. 18, 조선일보) 그동안 맹목적 자주(自主)를 추구하고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류해온 노무현 정부의 외교가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는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무현 정부가 선택해야 할 합리적인 방안은 미국과의 공동보조를 통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골몰하고 있는 중국한테마저도 배신당하고 정말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것이 냉혹한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