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의혹으로 네티즌들의 사퇴압력을 받던 정지영 아나운서가 지난 19일 결국 SBS에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번 정 아나운서의 사퇴가 이른바 ‘인터넷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인신공격성 글 잇달아

    대리번역 의혹이 제기되는 뉴스가 포털에 게재되자 댓글에는 네티즌들의 질책성 글이 쏟아졌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정 씨에 대한 욕설과 인신공격이 담긴 댓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후 출판사 한경BP측의 이중번역이라는 공식입장이 발표됨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정 씨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또 정 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 정 씨에 대한 개인비방과 경질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달리는 광고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진짜 정지영 아나운서가 대리번역을 하였나

    그러나 이번 대리번역 파문에 대해서 출판사측에서는 정 씨 모르게 이중번역을 진행하였다고 하였고 정 씨는 번역이 다른 부분은 단순히 출판사에서 첨삭한 것으로 알았다고 말하였다. 출판사측의 말과 정 씨의 말을 따져보면 이번 사건의 문제는 정 씨가 아니라 출판사측에 존재한다. 처음부터 정 씨와 소비자들을 속인 것은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번역에 정 씨의 번역이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출판사의 편집자만이 알고 있다. 출판사와 정 씨의 보도 자료만으로는 사실여부를 정확히 판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네티즌은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네티즌들은 대리번역 파문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정 씨에게 있다며 정 씨에 대해서만 비난의 화살을 집중하였다.

    인터넷 마녀사냥 어디까지인가

    이번 사건은 이전에 네티즌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개똥녀’나 ‘철사마’ 사건처럼 네티즌들은 대중이 옳다고 여기는 바에 어긋난 사람에 대해서 인신공격, 욕설,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의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고 인권을 박탈시켰다. 이는 인터넷 마녀사냥이다. 일반적인 감정적 공감에서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죄를 지었기 대중에게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단순한 발상이다.

    이러한 인터넷 마녀사냥과 같은 여론재판은 이제 대중들에게 익숙하다. 너무나도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공론장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표출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네티즌들은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면 그 본질을 파악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버렸다. 댓글의 도배와 무분별한 퍼 나르기를 통해 단순한 생각만 네티즌들에게 전달하였고 다른 의견은 무시당했다. 결국 인터넷은 대중선동과 마녀사냥의 도구로 전락하였고, 사이버공간에서는 인민재판만이 성행하게 되었다.

    인터넷 마녀사냥의 대상은 누구라도 상관없다. 예를 들어 네티즌들은 최근 있었던 된장녀 논쟁 또한 인터넷 마녀사냥의 일종이다. 네티즌들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치와 허영의 상징인 ‘된장녀’ 취급했다. 단지 인터뷰만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가 하면 한때 대중의 연인이었던 노현정 아나운서도 재벌 3세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된장녀 취급받으며 이유 없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결국 인터넷 문화는 인터넷이란 논쟁의 장에서 갈등이 쉽게 드러나는 사건을 통해 집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저급한 배설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 마녀사냥의 진짜 위험성

    얼마 전 인기그룹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음료수 테러를 당했다. 이 테러는 온라인을 통해서 비난을 하며 사이버테러를 하던 안티 팬이 오프라인 테러까지 감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동생을 죽였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는 일상화된 사이버공간이 네티즌의 현실감각을 마비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년으로 취급받는 20세의 여대생이 악플(이나 마찬가지의)이 잔뜩 담긴 쪽지를 건네며 본드가 담긴 음료수를 건넬 때 실제로 그 음료수를 마실 줄 모르고 건넸다는 말을 했다. 용의자에게 있어서 음료수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던 욕설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포털에서 연예인 기사에 대해 악플을 다는 악플러들이 실제로 당사자의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테러용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터넷 마녀사냥이 더욱 더 위험한 점은 위 사건과 같이 언어의 폭력이 언제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인터넷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면 그때부터 개인의 사생활은 없다. 얼굴과 다니는 학교, 직장은 물론 개인 홈피와 집주소와 휴대전화번호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어버린다. 낙태시술자의 모든 정보가 공개된 ‘뉴렘버그 파일’로 인해 낙태 시술자가 살해된 사건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상을 현실에서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버테러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음과 동시에 신체적 위해에 대해서 걱정해야하는 것이다.

    인터넷 잘 쓰면 약, 못쓰면 독

    인터넷 마녀사냥은 인터넷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인터넷은 참여 문화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인터넷 문화는 월드컵 거리응원과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등 화합을 이끌어내고 사회의 부조리를 전 국민의 공감대로 만드는 긍정적인 현상을 이끄는 역할을 하였다. 그와 동시에 한 개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리는 모습도 보여 왔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말하길 약초와 독초의 구분은 없다고 하였다. 약초를 적재적소에 쓰면 약이고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적절히 사용하면 사회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개인의 인격을 짓밟게 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표현의 자유는 동반될 때 존중받는 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네티즌들은 익명성을 가장한 자신의 사생활처럼 타인의 사생활 또한 보호받아야한다는 것을 생각해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