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고 14일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대북제재결의안(1718호)을 채택한데 이어 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 대북제재를 향한 긴박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현재 군사장비를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을 추적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편 19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한미외무장관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량살상무기 이전을 막고 그것을 만드는 돈줄을 차단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하였고, 20일 중국으로 떠나기 앞서 가진 K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공격적인 행동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여 노무현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와 대북경제협력사업에 대한 조치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또한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한에 앞서 17일 방한한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금강산관광 사업에 대해 "북한 권부에 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긴박한 움직임과는 달리 "유엔 결의와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사업은 관련이 없으니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대북제재결의 이행을 둘러싸고 한미간에 나타나고 있는 판이한 입장 차이는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금강산관광 사업이다. 앞에서 보듯이 미국이 금강산관광 사업에서 나온 수입이 '대량살상무기 제조와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과 같은 한미간의 입장 차이는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한미관계는 물론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惡影響)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같은 우려는 노무현 정부가 금강산관광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금강산관광 사업의 주체인 현대 그룹이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은 모두 북한 당국의 손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 사업은 19일 공식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또한 금강산관광 사업과 관련하여 정부가 국내 또는 북한에 제공한 직·간접적 지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에는 북한의 핵, 미사일,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금과 경제적 지원 등을 결의안 채택일로부터 즉각 동결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게다가 이와는 별도로 미국이나 일본은 국내법에 따라 북한의 불법행위와 관련된 경제주체에 대해 자국에서의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제정된 애국법(愛國法, Patriot Act)에 근거하여 자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는 기업의 자국내 경제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된 북한의 기업과 개인에 대한 금융제재를 단행한 데 이어 앞으로 이들 북한 기업과 관련된 한국 기업의 명단까지 발표하는 경우 해당 한국 기업은 일본과의 금융거래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1998년 이후 금강산관광 대가 4억 5천만 달러를 포함하여 모두 9억 5천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한 현대 그룹이(2006. 10. 18, 조선일보) 국제사회에서 어떤 제약을 받게 될 지는 명약관화하다.

    만일 현대 그룹이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선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에 더해 만일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이라도 미치게 될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험했던 외국자본 탈출, 경기 위축과 같은 부작용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금년 들어서만 92억 달러 이상의 외국자본이 우리나라를 떠난 상황에서(2006. 10. 19, 조선일보) 국내 주식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외국자본의 일부라도 급작스럽게 빠져나갈 경우 그 후유증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던 지난 9일의 금융, 외환시장 상황이 '검은 월요일'이라고 부를 만큼 요동쳤던 사실이 기억에 생생하다. 또한 우리는 2003년 2월 중순 미국의 무디스가 갑자기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2단계나 떨어뜨렸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당시 무디스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북한 핵문제 악화라는 이유와는 달리 새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의 한 인사가 미국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한의 핵무장과 북한의 붕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 젊은이들은 전쟁 시나리오보다는 북한의 핵무장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2006. 10. 11, 조선일보) 이처럼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 한 마디에도 국가의 신용등급 전망이 출렁이는 것이다.

    이제 북한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에다 대북경제협력사업의 지속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영향이라도 받게 되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현재 대북제재를 향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노무현 정부 책임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유엔 결의와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사업은 관련이 없으니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 "전쟁보다는 북한의 핵무장이 낫다"는 입장으로 비쳐지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 노무현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이탈하고 다른 길을 가는 것이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