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연>은 어느덧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버린 장쯔이를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장쯔이는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은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와호장룡>에서만 해도 풋풋한 소녀 같은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런 후에 그녀는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그녀만의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게이샤의 추억’에서 혹독한 일본 기생훈련과 자국 내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호평과 찬사가 이어졌다.

    <아연>은 장쯔이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끄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전에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집고 넣어가야 것들이 있다.

    <영웅>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식 CG무협은 <무극>에서 정점에 이른 거 같다. <무극>에서 보여주었던 ‘인간 연날리기’라는 초유의 신공을 보여 관객을 경악시켰다. 이 영화의 여파로 중국식 무협 블록버스터라고 것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무극>을 포함한 <영웅> 등에서 나타난 가학적인 CG는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영화가 그전 영화들과 무슨 차별성이 있을지. 또 중국식 CG무협의 창궐일까(?) 그런 선입견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중국의 스필버그’라는 펑 샤오강과, <매트릭스>의 무술감독 원화평, 그리고 <연인>의 장쯔이가 만났다는 것 외에 기대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엔 또 별거 없구나’라는 이상한 양가감정은 더 이상 품지 않아도 될 듯싶다. <야연>은 분명 기존 작품들의 대를 잇는 중국적 판타지 무협 로맨스물이지만, 기존 작품들의 아류적인 문제들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또한 스펙터클을 위해 남발되던 CG도 상대적으로 상당히 절제되었다. 물론 그림은 여전히 아름다운 색채와 색감을 제시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와호장룡>의 미술감독과 <연인>과 <천리주단기>의 촬영감독, 그리고 <영웅>과 <매트릭스>의 무술감독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영상은 유려함의 극치다.

    사실 이 아름다운 색감과 장쯔이의 매력이 무용처럼 펼쳐지는 액션장면은 그야말로 판타지 그 자체, 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더불어 다행스러운 것은, <야연>은 그간 지적되어 오던 스토리의 한계문제를 상당부분 극복했다는 점이다. 중국무협 블록버스터가 늘 영상에만 집착해왔던 한계를 알고 있던 펑 샤오강은 이 영화에 블랙코미디를 가미시켜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것은, 탁월한 연출 솜씨를 발휘한 것으로 기존 작품들의 단점을 비껴간다.

    펑 샤오강은 이 영화에 서구의 고전인 <햄릿>이라는 스토리를 투영시킨 것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평가는 분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나라 패망 이후 혼란의 중국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토리 라인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감독에게 있어서 시대와 배경이 달라졌으니 셰익스피어의 묘사 그대로 등장하면 곤란한 일이었다. 감독은 전통적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를 삭제한 뒤, 이야기를 새 황제와, 황후, 그리고 전 황제의 아들의 삼각관계로 집중시킨다. 즉, 햄릿이 오필리어 대신 계모를 사랑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햄릿>에서는 왕비와 오필리어는 순정적 희생자로 배치돼 있지만, 펑 샤오강의 오필리어 이자 왕비인 황후 완은 무용(武勇)을 겸비한 인재인 동시에 자신의 사랑과 권력을 지킬 줄 알며, 스스로가 길을 찾는, 보다 적극적인 인물로 묘사 되어 있는 것이 흥미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서구의 명작인 <햄릿>을 중국 무협블록버스터로 재해석 해낸 <아연>은 배신과 음모, 권력을 향한 쟁투가 끝없이 벌어지는 궁중의 폐쇄적 한계 속에서 세 남녀의 동상이몽을 통해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끝없이 권력을 잡고자 하더니 이내 사랑까지 빼앗고 싶은 남자와 모든 것을 빼앗긴 뒤 마지막 복수를 꿈꾸는 남자,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거는 여자의 이야기가 화면 속에 꿈틀거리고, 어긋난 세 남녀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에 점수를 줄만 하다.

    특히 좌절된 욕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갈구하는 권력의 화신 리를 연기한 유게는 참 매력적이다. 아름답고 착하기만 한 연인에서 욕망이 숨겨져 있는 여자로 다시 태어난 ‘완’(장쯔이)의 표정은 묘한 느낌의 중성적인 매력이 묻어난다. 또한 진정한 ‘팜므메탈’의 매력일까? 아름다운 뒤태와 유혹적이고 순정적인 장쯔이의 모습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정묘사의 디테일과 속도가 다소 떨어진 느낌이 들고, 또한 그 구성이 아주 딴딴 것은 아닌 듯싶다. 물론 <아연>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전에 있었던 중국 무협블록버스터를 답습하지 않고, 절제와 변용의 미덕을 잘 살린 작품이기 하다.

    다만,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또 하나의 감정은 영화감독이라면 꼭 하고 싶은 작품이 <햄릿>이라고 한다. 마치 그것을 실행 한 듯 한 모습이 보이며, 또한 애틋하게 서구를 갈망하는 중국인들의 속내가 엿보여서 묘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