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입은 물류"… 한진, '로지테인먼트' 창시게임부터 영화·완구까지, 미래물류 청사진 제시
  • ▲ 단편영화 '백일몽' 스틸 컷. ⓒ한진 공식 유튜브 채널
    ▲ 단편영화 '백일몽' 스틸 컷. ⓒ한진 공식 유튜브 채널
    기업이 영화나 공연 등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새로운 트렌드도 아니다. 메세나(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 활동)나 문화 마케팅의 일환으로 예술계 지원에 나선 기업들의 사례는 부지기수.

    하지만 물류 기업 한진은 달랐다. 영화 제작과 투자의 '주체'가 돼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작품 속에 녹여낸 것. 한진은 최근 택배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 '백일몽'을 선보였다. 한진의 택배 산업 진출 30주년을 맞아 '택배'를 소재로 삶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제작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일상에 더욱 깊숙이 자리 잡은 택배산업의 주인공인 택배기사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으로 모자간의 삶과 효를 담았다.

    택배 기사 '기철'은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물량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요양병원에 어머니 '순자'를 모시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어머니와 함께 배달 차량에서 하루를 보낸다. 점점 심해지는 순자의 치매 증상과 몰려드는 일감으로 인해 심적으로 지쳐가는 기철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택배를 소재로 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인위적인 PPL(간접광고)은 없다. '택배’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한 회사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소재가 아닌, 하나의 문화 콘텐츠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영화엔 한진 택배 차량과 집화점, 택배 기사의 유니폼 등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지만 스토리와 장면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 뿐이다.

    '백일몽'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한진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초기 개봉 이벤트 이외에, 유튜브 구독자 수를 늘리거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인 바이럴 마케팅은 하지 않았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아닌 유튜브, 그것도 기업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지만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타고 구독자 수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영화를 본 이들, 또 업계 관계자들은 "생각지 못한 의외의 마케팅이지만, 절묘하게 고급스럽다", "택배 하면 한진이 생각날 것 같다" 등의 평을 내놓았다.

    '백일몽'은 제작사 사려니필름이 제작한 영화로, 1년여간의 긴 제작 기간을 거쳐 탄생했다. B2B로 전개되는 물류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해 온 한진이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 후원까지 했지만, 각본과 연출을 맡은 홍영아 사려니필름 감독은 새로운 이야기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창작자의 자율성까지 보장하는 '넷플릭스'에서 작업하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홍 감독은 지난해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영화 '백일몽'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 제작에 기업의 개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 감독은 "한진으로부터 단편영화라는 아이디어를 제안받았을 때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든 믿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한진은 오래된 기업이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경쾌하고 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토리보드 만들며 스태프들과 일할 때도 한진에서 투자해 만든 콘텐츠라는 걸 못 느낄 정도였다"며 "마치 넷플릭스처럼 창작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듯 제작 분위기가 자유로웠다"고 전했다.

    조현민 한진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 사장은 "한진 입장에선 행복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그건 우리도 만들 수 있다"며 "광고주가 손대면 산으로 가기 때문에 어떤 결과물이 나오던 감독님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택배에 대한 이야기를 절묘하게 문화 콘텐츠로 빚어낸 결과는 남달랐다. 오랜 제작 기간만큼이나 높은 완성도의 작품이 완성됐고 이탈리아 골든단편영화제, 미국 WRPN여성국제필름페스티벌, 미국 뉴포트비치필름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한진은 업계 최초로 물류(Logistics)에 문화(entertainment)를 결합한 '로지테인먼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백일몽은 이러한 로지테인먼트의 '화룡점정'이었던 것이다.

    한진은 그동안 물류 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 고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에 물류 요소를 결합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모든 작업은 물류업계 최초였다.
     
    로지테인먼트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지난해 초엔 업계 최초로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 미래지향적 가상 물류 공간을 구현한 '한진 로지버스 아일랜드'를 구축했다. 또 지난해 7월엔 물류 세계관을 표현한 모바일 게임 '물류왕 아일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2021년 5월 론칭한 모바일 택배게임 '택배왕 아일랜드'의 분류, 상차, 배송을 모티브로 한 미니게임 3종에 △숨은그림찾기와 △운송탈출게임이 추가된 버전이다. 게임 속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진의 물류 세계관을 고객과 함께 완성해가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와 함께 한진은 택배왕 아일랜드 캐릭터의 발랄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를 활용해 '어디든 간다' SNS 시리즈 콘텐츠도 제작했다. 올 초에는 업계에서 처음으로 초콜릿 기프트 세트, 블록 완구 2종, 차량 방향제 등 5종으로 구성된 브랜드 굿즈까지 선보였다. 택배∙물류의 재미있고 스마트한 모습 담아 고객에게 물류에 대한 새로운 경험 제공하기 위한 시도다.

    "물류와 문화가 만난다". 언뜻 생각하기에 어색하지만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신선한 조합을 현실로 구현해낸 한진은 앞으로도 물류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로지테인먼트를 더욱 강화해 영화, 미술 등 예술과 접목한 폭넓은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고객과의 소통을 확대할 계획이다.

    단순한 제품이나 기업 홍보 대신 고객에게 택배라는 물류 산업을 소재로 진심으로 고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한진의 2023년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