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현준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SNS·언론기고 통해 "국가의 직무유기" 규정"재판기일 지연으로 피해는 온전히 피고인의 몫으로 넘겨져… 고통 가중""박영수특검 사퇴한 후 수사·재판 진행하지 않으면서 국민 혈세만 낭비"
  •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보고시간 조작 혐의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보고시간 조작 혐의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정책에 따른 한정된 재원의 분배 과정에서 이뤄진 결정을 두고 사후적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됐다며 해당 정책의 시행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한다면, 정책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은 언제든지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박상옥 대법관)

    2020년 1월30일, 이른바 '문체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을 대상으로 박상옥 대법관이 낸 무죄 취지 의견이다. 그로부터 2년9개월이 지난 지금도 재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이 구속 기소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들의 족쇄를 풀어 줄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판이 이유 없이 길어지면서 피고인들에게 억울한 고통만 쌓여간다는 것이다.

    허현준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26일 페이스북과 언론 기고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내며 "이 사건의 1심, 2심은 물론이고 대법원의 심리도 길어지면서 김기춘 비서실장 등 피고인들이 겪는 고통은 가중됐다"고 말했다.

    "피고인들 유죄가 확정되지도 못해 변호사 개업도 불가"

    허 전 행정관은 "재판 과정에서 특별한 사유도 없이 재판기일이 늦어지는가 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재판이 지연돼 그 피해는 온전히 피고인의 몫으로 넘겨졌다"며 "조윤선 장관이나 정관주 차관의 경우 변호사가 직업인데, 유죄가 확정되면 선고 이후 5년이 지나야 다시 변호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지 않으니 일을 못하는 기간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전 행정관은 이렇듯 재판기일이 늦어지며 '미제(未濟) 재판'으로 남겨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국가의 직무유기로 규정했다. 

    "지난해 대법원의 하급심 파기환송 선고 이후로는 1년10개월, 박영수가 사퇴한 후로는 1년4개월 가까이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임대료와 수사관 등 직원 월급은 계속 지출하고 있다"고 밝힌 허 전 행정관은 "박영수 특검이 사퇴한 후 수사도, 재판도 진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전 행정관은 이어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등을 합하면 1년간 수억원의 세금이 빠져나간다"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국민 세금만 줄줄이 새고, 각 부처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개탄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허 전 행정관은 ​"헌법 제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돼 있다"며 "이 사건보다 늦게 기소된 사건도 다 재판이 끝났다. 이 사건만 아직 '미제 재판 사건'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기관의 태만과 직무유기… 더는 방치해서는 안 돼"

    허 전 행정관은 이를 국가기관의 태만과 직무유기의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는 그간 재판을 지연시켜온 법원, 금품수수 의혹으로 사임한 박영수 특검, 신속하게 후임 특검을 임명하지 않은 문재인 전 대통령, 특검 부재에 따른 입법조치 등을 하지 않은 국회의 책임이 크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국가기관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허 전 행정관은 "국회 법사위는 시급하게 법률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전 행정관은 또 "특히나 국민의힘 법사위원장과 위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법무부도 특검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며 비껴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 전 행정관은 김 전 비서실장의 수난도 언급했다. 1년6개월의 형을 모두 채우고 출소한 김 전 비서실장은 출소 당시 좌파 단체 시위대들에 의해 공격 당했다.

    이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차량 위로 올라갔고, 자동차에 탄 김 전 비서실장을 끌어내리려 했다. 물병을 던지고 삿대질과 욕설도 쏟아냈다. 차를 막아서고 차량을 부수는 등 폭력 행사로 차량의 앞유리가 깨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허 전 행정관은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너무 달랐다"며 "김기춘 비서실장 출소 당시 차량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한 시위자를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문재인정권의 경찰은 그렇게 대조적이었다"고 비난했다. 

    당시 김경수 경남지사는 댓글조작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중 시위자에 의해 뒷덜미를 잡혀 신체가 잡아끌렸고, 경찰은 시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허 전 행정관은 또 "김기춘 비서실장의 장남이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의 위중한 상태로 병원 중환자실에 있은 지도 9년이 됐다"며 "하나뿐인 아들의 위중한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들 텐데, 그 시간 김 실장은 자식 곁을 지켜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