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시스터즈 출신, 보컬트레이너로 유명… 임영웅·이기광·소유가 '제자''보컬만렙' 찍은 영지, 3년간 방황하다 트로트 만나 '회심'…성인가요 도전
  • ▲ TV조선 '미스트롯2'에 '왕년부' 도전자로 출연한 가수 영지의 모습. ⓒTV조선 방송 화면 캡처.
    ▲ TV조선 '미스트롯2'에 '왕년부' 도전자로 출연한 가수 영지의 모습. ⓒTV조선 방송 화면 캡처.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의 유현상이 1991년 트로트곡 '여자야'를 발표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지상파 메인뉴스에서도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을 정도로 유현상의 변신은 파격적이었다.

    이후 트로트로 전향한 후배 가수들이 일부 등장했지만 데뷔 초 갈아탄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유현상처럼 기성 가수가 트로트 가수로 180도 변신한 예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무심코 TV를 보던 시청자들이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보게 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다름아닌 가수 영지(본명 김영지)가 TV조선 '미스트롯2'에 '왕년부' 도전자로 출연한 것.

    2003년 '버블시스터즈'로 데뷔, 18년간 발라드만 불러온 보컬리스트가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것은 '유현상 쇼크'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영지가 '트로트 새내기'로 선 첫 경연무대의 심사위원은 자신의 제자 임영웅이었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로트 왕자로 거듭난 임영웅은 경복대 재학 시절 영지에게 실용음악을 배웠다. 더욱이 임영웅은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선 영지의 '첫 제자'였다. 이런 드라마틱한 인연이 또 있을까?
  • ▲ TV조선 '미스트롯2'에 '왕년부' 도전자로 출연한 가수 영지의 모습. ⓒTV조선 방송 화면 캡처.
    30살 때 가르친 '첫 제자' 임영웅… 10년 만에 도전자-심사위원으로 만나

    "얼마나 놀랐겠어요. 교수님이 도전자로 나왔으니…. (웃음) 제가 30살 때 교수로 선임돼 첫 강의를 나갔는데요. 그 수업에 임영웅 마스터님이 계셨어요. 제 첫 제자였죠. 사실 서류심사에서부터 떨어질까봐 아무에게도 나간다는 말을 안 했어요. 연락두절하고 있다가 그냥 딱 나온 거죠. 호호."

    '미스트롯2' 심사위원 중에는 임영웅뿐만 아니라 '절친' 장윤정도 있었다. 평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볼 정도로 막역한 사이지만, 영지는 '미스트롯2' 준비에 들어간 이후부터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심사위원으로 자리한 지인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경연이 이어지는 내내 인사 외에는 대화도 자제했다.

    "사실 마스터분들과 다들 친분이 있어요. 그분들에게 제가 본의 아니게 큰 숙제를 내드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죠. 속으로는 '아니 쟤는 왜 여길 나와서 우릴 힘들게 하냐'고 원망들을 많이 했을 거예요."

    그러나 지인들이 포함된 심사위원단은 영지에게 결선 무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미스트롯2' 콘서트 멤버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던 영지는 본선 3차전에서 탈락, 골드미스팀과 함께 '미스트롯2'을 떠나게 됐다.

    "실력으로 떨어진 거죠. (웃음) 트로트 새내기인 제가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감사해요. 물론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은 너무 아쉽지만 거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 아니었나 싶어요."

    가요계서 '보컬 고수'로 유명… '미스트롯2'로 전국적 인지도 얻어


    2005년 버블시스터즈를 나온 영지는 다수의 솔로앨범을 발매했지만 그룹 활동 때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2013년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잠시 유명세를 얻기도 했으나 '영지'라는 이름은 가요계에서만 회자되는 이름이었다.

    오히려 그는 가수보다 보컬트레이너로 더욱 각광받았다. 버블시스터즈 시절부터 '보컬 끝판왕'이라는 소리를 들은 영지는 '씨스타'의 소유, '비스트'의 이기광, '포미닛'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의 보컬트레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제 팬클럽 이름이 '영지버섯'이에요. (웃음) 데뷔 때부터 묵묵히 저를 응원해주고 계셨는데요. 그동안 어디에 가서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고, 나는 그분의 팬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웃음) 그랬던 '영지 언니'가 TV에 척 나온 거죠. 호호. '미스트롯2'를 통해 저를 알게 된 팬분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표현하시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했던 그 팬들이 지금은 자기가 영지를 먼저 알았다며 신이 난 모습이에요."

    앞선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에서도 탁월한 가창력을 뽐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지금처럼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된 건 순전히 '미스트롯2' 덕분이다.  

    이런 그를 두고 '요즘 트로트가 대세니, 한 번 맛이나 보자며 슬쩍 발만 담갔다가 빼려는 게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다고.
  • ▲ TV조선 '미스트롯2'에 '왕년부' 도전자로 출연한 가수 영지의 모습. ⓒTV조선 방송 화면 캡처.
    "'트로트 인기에 편승‥ 이벤트성 출연 아니냐'는 오해도 받아"

    영지는 "제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트로트에 뛰어들었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처음 장르 변경을 시도했을 땐 주변에서 무모하다며 말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장윤정 언니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해 8개월간 지방 공연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트로트라는 장르에 눈을 뜨게 됐어요. 보통 발라드 가수는 노래가 끝나면 조용히 무게 잡고 내려오는데요. 트로트는 항상 흥이 있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되게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얼마 후 장윤정에게 트로트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꺼내자, 처음엔 찬성은커녕 자신을 뜯어 말리기 바빴다고.

    "제가 부르던 장르와 트로트가 얼마나 다른지 잘 알기에 그랬던 거죠. 그래도 트로트에 대한 제 관심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제가 3년 정도 음악을 끊고 산 적이 있는데요. 저를 완전히 내려놓는 시기가 있었죠. 그때 대학 강의만 하면서 심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당시 트로트를 들으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어요. 제 전공인 발라드나 팝을 들으면 자꾸 분석을 하게 되는데, 트로트는 그냥 편히 듣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트로트가 뭘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죠."

    3년간의 심적 방황을 끝내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하자 이제는 장르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혼자서 1년을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트로트에 대한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트로트가 뭔지 배워오자'는 마음으로 '미스트롯2' 도전"


    그 무렵 '미스트롯' 시즌2가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연히 '미스트롯2' 예선전 공고를 접한 영지는 "저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트로트가 뭔지 배워오자"는 마음을 먹었다.

    경연에서 우승해 나를 알려보자는 목적이 아닌, 순전히 배우자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다는 영지는 "발라드와 트로트가 모든 점에서 달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트로트 초짜'로 도전하는 입장이라 모든 면에서 어설펐지만, 트로트에 대한 '진정성'만큼은 인정받고 싶었다고.

    "힘드냐? 힘들면 힘들다 해. 아프냐? 아프면 아프다 해라. 트로트는 제게 이렇게 말해 주는 음악입니다."

    지난해 12월 24일 '트로트 새내기'로 '미스트롯2' 첫 무대에 선 영지는 "노래하고 싶어서 나왔다"며 "트로트와 '오늘부터 1일' 하고 싶은 데뷔 18년차 가수 영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가 인기나 얻어보자고 가벼운 마음에 출전했다면 사람들의 이목이 정말 신경쓰였을 거예요. 그런데 전 진심이었거든요. 그래서 트로트에 대한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이런 트로트를 부르고 싶다고. 아마 그 방송을 보시고, 이런 제 마음가짐이 조금은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 ▲ TV조선 '미스트롯2'에 '왕년부' 도전자로 출연한 가수 영지의 모습. ⓒTV조선 방송 화면 캡처.
    "코로나로 어려움 겪는 제자들에게 '도전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영지가 '미스트롯2'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또 있다. 코로나19로 위축돼 있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작은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고.

    "이 친구들이 지금 캠퍼스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요. 대면을 못하니 지금 방 안에서 얼마나 외롭겠어요. '아직 꿈을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할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 친구들한테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장르를 떠나 '진심'을 담아 부르는 영지의 모습은 많은 제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중에는 "사실 많이 힘들었는데, 교수님이 도전하시는 모습을 보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는 제자도 있었다.

    "방송 중에 이런 문자가 왔어요. '미스트롯을 통해서 교수님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가수 영지의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포를 하시는 것 같아, 도전받았습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요. 이 문자를 받고 정말 많이 감동했고, 저에게도 큰 힘이 됐어요."

    '트로트 새내기' 영지가 목표로 삼은 트로트는 '진한 트로트'다. 감동도 진하고, 감성도 진하고, 흥도 진한…, 그야말로 깊은 맛이 우러나는 트로트를 부르고 싶다는 영지.

    "구수한 것과는 좀 다른데요. 보통 재즈를 들으면 진하잖아요. 알앤비를 들어도 진하고. 때론 끈적거리기도 하죠. 제 트로트를 들으실 때도 진한 감성을 느끼셨으면 해요."

    "흥도 많고 감동도 진한 '영지표 트로트' 선보일 터"


    '미스트롯2'을 통해 이제야 '감'을 잡았다는 영지는 마침내 농도 짙은 '영지표 트로트'의 정수(精髓)가 담긴 신곡을 공개했다.

    "제 트로트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많은 분들이 발라드 트로트를 예상하셨겠지만, 제 첫 곡은 정통 댄스 트로트예요. 처음부터 돌아가지 않고 곧장 직진하기로 마음 먹었죠."

    지난 7일 공개한 신곡 '돈은 내가 낼게요'로 활동 중인 영지는 트로트도 새롭지만 난생 처음하는 빠른 템포의 노래라, 안무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영지의 첫 트로트곡 '돈은 내가 낼게요'는 '미스트롯2'에서 김태연의 '오세요'를 만든 작곡가 그룹 '뽕서남북'의 작품.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요즘 연애 스타일을 직설적인 노랫말로 표현한 곡이다.

    이 곡을 통해 영지는 '꽂힌 남자에게 당당하게 고백하는 요즘 여성', '돈 없는 동생들에게 밥 잘 사주는 멋진 언니', '호구에게 기꺼이 지갑을 잡혀주는 속 깊은 동생'의 입장을 대변해주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영지는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에 사랑스러움까지 한 스푼 더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제 트로트 노래 실력이 매일 늘고 있거든요. '돈은 내가 낼게요'를 무려 한 달 동안 녹음했는데요. 첫날 부른 버전과 마지막 결과물을 비교해보니 노래가 엄청 많이 는 거예요.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잘 부를 자신이 있어요. 이 나이에 '이만큼 노래가 늘었어요'라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새로운 마음으로,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영지는 "이제는 소식이 끊기지 않는 가수가 되겠다"며 "트로트 신인 가수 영지를 많이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제가 유튜브에서 '땡지'라는 부캐(부캐릭터)로도 활동하고, 유뷰브 채널(영지랜드)도 운영 중인데요. 오셔서 '좋아요' '구독'도 눌러주시고,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새로운 노래 나오면 또 인사드리러 올게요. 감사합니다."

  •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영상 = 이기륭·장세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