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지 쪼개기, 나무 심기 "보상 방식 알고 투기한 정황"… 文 부동산 정책 명분 사라져
  •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지구 신도시 사전 땅 투기 의혹에 대한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종현 기자(사진=공동취재단)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지구 신도시 사전 땅 투기 의혹에 대한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종현 기자(사진=공동취재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지구 신도시 사전 땅 투기 의혹에 따른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정세균 국무총리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수조사와 엄벌을 지시했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문 대통령에게까지 화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 장관을 전격 교체하고, 공급 확대로 정책 방향을 틀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정책 수행의 핵심기관인 LH에서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터지자 공공주도 개발이 그 명분마저 잃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文 정부 부동산 정책 정당성 무너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수도권 LH 직원 14명과 이들의 배우자·가족들이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기 신도시 후보지인 광명·시흥지구의 땅을 나눠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매입한 토지는 지구 내 시흥시 과림·무지내동 일원 10필지 2만3028㎡(6965평)로, 매입 금액은 100억 원대로 추정된다고 민변은 덧붙였다.

    해당 토지는 신도시 지정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농지(전답)이며, 개발에 들어가면 수용보상금이나 대토보상(현금 대신 토지로 보상하는 방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땅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 상당수는 LH에서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들의 토지 구입비 100억 원 가운데 절반가량은 은행대출로 추정돼 '차익을 노린 공격적 투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필지는 사자마자 1000㎡ 이상씩 '쪼개기'를 하고, 대대적인 '나무 심기' 정황도 포착되는 등 보상 방식을 알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이유로 지난 2·4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부터 개발지구 지정 전 해당 지역의 주택이나 토지를 샀더라도 우선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을 하겠다는 강수까지 뒀다. 하지만 투기 수요를 배척하고 공공사업을 주도해야 할 LH가 오히려 개발지역 사전 투기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이번 의혹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2·4 주택 공급 대책' 추진은 물론 공공주도 개발방식 자체가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4일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의혹은 투기를 넘어 절도에 가깝다. 변창흠 장관은 관리 책임이 있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사퇴해야 마땅하다"며 "당연히 변 장관을 임명한 문 대통령 역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 역시 이번 사태가 여권에 큰 악재로 작용하리라 내다봤다. 서 변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정권 들어 부동산 문제가 국민들이 대단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분야로 떠올랐다"며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여권에 상당히 불리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그간 부동산 이슈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는데, 이번 LH발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자칫하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길 수 있다"며 "더불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서울·부산시장선거에 미칠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LH 자체조사 '직원 13명 땅 취득' 사실 확인… 경찰도 수사 착수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정부는 지난 3일 광명·시흥지구 외에 남양주 왕숙 등 다른 3기 신도시에서도 땅 투기가 있었는지 전수조사를 하기로 했다. 조사 대상은 LH 직원을 포함해 국토교통부와 관계 공공기관 직원 및 그들의 가족이다. 

    국토교통부와 LH가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자체조사한 결과, LH 현직 직원 13명이 해당 지역 내 12개 필지를 취득한 사실도 확인됐다. LH는 즉각 이들 직원을 직무배제 조치했다.

    경찰도 지난 3일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조사와 수사의 핵심은 신도시 후보지로 발표되기 전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땅을 투기 목적으로 구입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데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 공무원이나 LH 직원들이 신도시 후보지 발표 전에 개발 정보를 알아채고 땅을 사들였다면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한 토지 구입으로 처벌할 수 있다.

    현행법상 이번 투기행위 처벌 못한다? 법조계 "업무상 연관성 충분"

    문제는 '투기성 거래 여부'를 따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나 LH 등 택지개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및 공공기관 임직원의 투기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규는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법을 살펴보면 '부패방지법' 7조는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일을 금지'했다. 

    이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의 유·무죄 판단은 '업무 관련성'에 달렸다.

    그러나 이번 땅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의 경우 새 도시 지정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이 부분을 강조하면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공주택특별법' 역시 '보안 관리 및 부동산 투기 방지대책'이라고 정한 9조에서 '공공주택지구 지정 관련 비밀누설 및 목적 외 사용을 금지'했지만,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사용할 경우'에 한해서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는 투기행위에 따른 몰수 규정이 없다는 부분도 문제로 제기된다.

    '자본시장법'은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의 최대 5배를 벌금으로 물리도록 돼 있다. 반면 '부패방지법'이나 '공공주택특별법'의 경우 택지개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행위의 이익을 몰수하는 규정이 없다. 징계받거나 해임되더라도 투기에 따른 이익은 고스란히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법 개정이나 제도 보완을 통해 앞으로 다시는 이번 땅 투기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대표인 홍세욱 변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LH 직원들이 LH가 주도하는 사업의 토지를 사들였기 때문에 새 도시 지정부서가 아니라고 해도 업무상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법을 적용해야 한다. 법을 너무 좁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는 그러면서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도 내부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들이 이득을 거뒀다면 이를 환수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