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징용 해법 없이 "역지사지로 머리 맞대자" 제안… "바이든에 보여주기식 메시지" 평가절하
  •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마친 후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마친 후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시스

    3·1절 기념사에서 일본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본이 '구체적인 제안'을 요청하며 싸늘한 반을을 보였다. 위안부·징용공에 대한 해법 없이는 한일 관계가 당분간 회복 국면에 들어설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한일 외교 채널은 냉각 상태다. 지난달 9일 부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의 상견례성 전화 통화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부임 한 달이 지난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는 모테기 외무상 및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면담 일정도 현재까지 조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중요한 것은 양국 현안 해결을 위해 한국이 책임지고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며 "현안 해결을 위한 한국 측의 구체적인 제안을 주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교도통신, NHK등 현지 언론들도 위안부·징용공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다며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새로운 것이 없었다"고 평가 절하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며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 역지사지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文 "역지사지로 머리 맞대자" 말로만

    과거 3·1절에 보였던 "전쟁 시기 반인륜적 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2018년),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2019년)라는 등 입장과 달리, 미래지향적 관계로의 전환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제안은 하지 않았다. 결국 대화 의지는 밝혔지만 과거사 문제와 한일 실질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을 강조하는 기존 입장엔 변함이 없고, 일본 측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은 것이다.

    한일 관계 파국은 문 대통령이 취임 초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면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중대한 흠결이 확인됐다", "새롭게 협상을 해야 한다"고 파기한 뒤, 약 3년여 세월이 지난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그 합의가) 양국 정부 간의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정면으로 견해를 바꿨다.

    바이든에 '보여주기식' 메시지… 美는 신중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돌연 한일 관계 개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 신문은 문 대통령의 대화 제스처가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유화 메시지를 던진 것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우리는 일본과 한국이 이 문제(위안부·강제징용 판결)와 관련해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함께 일할 것을 오랫동안 독려해 왔다"면서 "우리의 두 동맹인 일본과 한국 간 관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움직임을 계속해서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위협을 줄이는 것은 물론 남북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우선으로 여기면서 실질적으로 한일관계가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주호영 "죽창가 부르던 정권, 국민에 설명해야"

    야권에선 문 대통령이 대 일본 강경 태도를 전환하면서도 구체적 설명이 없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상황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일본 입장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갈팡질팡 외교 메시지에 외교 기조만 갈피를 못 잡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친일 잔재 청산을 구호처럼 내세우면서 죽창가를 부르던 정권, 걸핏하면 친일파와 토착왜구 몰이를 하던 정권"이라며 "국가 간의 관계는 물론이고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진정성은 평소 관계를 전제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외교 기조 전환에 국민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대통령은 어디로 가셨나"라며 "남은 1년 이 정권이 정말 국익을 걱정하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역사의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과오를 사과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라. 좌충우돌하는 외교로는 어느 나라도 우방이 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