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1000명 '백기완 영결식'은 보호… 우파 3.1절 집회는 '9인 이하'도 금지서울시, 백기완 땐 서울광장 무단사용 방조… 3.1절 집회는 "불법, 엄정대응"
  • ▲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하며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하며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3·1절 보수 집회가 무서우니 또 정치방역. 백기완 장례식장 1000명은 코로나가 피해갔나." 
    "백기완 장례식은 무사통과… 백기완 씨 추모한 사람들은 '잠재적 살인자'들이다."
    "3·1절 집회 앞두고 슬슬 코로나로 놀아보자꾸나. 3·1절 다음날부터 코로나 확진자 대폭발하겠네."

    24일 우한코로나(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400명을 넘어섰다는 기사의 댓글난에 이런 반응이 올라왔다. 경찰과 서울시를 비롯한 방역당국의 이중 잣대에 따른 불만이다.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우파단체의 집회를 당국이 또 막겠다고 나서자 '정치방역'이라 불리는 방역행정을 향한 불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은 23일 온라인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불법집회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며 "집회 형태, 규모, 연대 가능성 등 집회 개최 동향이 구체화하는 대로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보수단체가 오는 3·1절에 문재인정권 규탄집회를 예고한 데 따른 경고였다.

    1000명 모일 땐 뒷짐 지더니… 서울시 "3·1절 집회 엄정대응" 

    방역을 철저히 하겠다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서울시의 태도다. 서울시는 지난 19일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에 다수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아무런 사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영결식 주최 측이 서울광장을 무단사용해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도 제지하지 않았다. 

    백 소장 영결식 당일인 19일 신규 코로나 확진자는 448명이었다. 전날인 18일에는 561명, 17일에는 621명까지 치솟던 상황임을 고려하면 당국이 더 긴장해야 하는 시기였음이 분명했다. 

    서울시와 경찰 등이 3·1절 집회에 강경대응 방침을 내놓은 23일 하루 확진자는 440명이었다.

    영결식 때는 "매우 안타깝다"던 서울시

    서울시는 백 소장 영결식이 진행되던 19일 "안타깝다"고만 했다.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서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서울광장에 임의로 분향소가 설치되고 영결식이 진행되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3·1절 집회에 "엄정대응"을 경고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서울시는 백 소장 영결식 특혜논란이 부각되자 영결식이 끝나고 사흘 뒤인 22일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을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광장 무단사용에는 변상금 267만원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변상금은 서울시 조례에 따른 것일 뿐 방역조치와는 무관하다. 서울시가 백 소장 영결식을 대상으로 방역지침에 따라 취한 조치는 뒤늦은 고발이 전부인 셈이다.

    관혼상제는 금지 집회 아니다?... 이상한 경찰 해명

    경찰의 태도 또한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현재 거리 두기 2단계에 따라 수도권에서는 결혼식·장례식 때 49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인의 경조사에도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축의금·조의금을 보내는 것으로 예를 갈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경찰은 19일 1000여 명이 모인 백 소장 영결식 행렬을 보호하기까지 했다. 백 소장 영결식에 경찰이 과도한 특혜를 부여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찰은 이 같은 비판에 "(백 소장 영결식은)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말하는 집회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해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이 원용한 것은 집시법 제15조로 보이는데, 이 규정은 "학문·예술·체육·종교·의식·친목·오락·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는 제6조부터 제12조까지의 규정(신고 의무 등 집회에 관한 각종 제한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경찰의 해명을 그대로 따른다면, 이 규정의 '학문·예술·체육·종교' 등에 관한 집회도 영결식과 마찬가지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공연행사는 이 규정상 '예술'에 관한 집회에 해당하므로, 1000명이 공연 관람을 위해 서울광장에 모여도 방역수칙을 적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3.1절엔 방역수칙에 부합하는 '9인 이하' 집회도 금지

    경찰은 3·1절 집회의 경우 "9인 이하 집회도 방역상 우려가 있으면 금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9인 이하 집회의 경우 마스크 착용과 참여자 명부 작성, 그리고 2m 이상 거리 두기 등의 방역수칙을 준수하면 개최가 가능하다. 

    경찰이 이처럼 방역수칙에 부합하는 집회마저 막겠다고 한다면 굳이 이런 기준을 방역수칙에 포함할 이유가 없다. 이러니 방역행정 전반을 대상으로 불신이 인터넷에서 만연한 것이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이 같은 '방역 이중잣대'와 관련해 서울시와 경찰 등 국가기관이 "법치를 유린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서 변호사는 24일 통화에서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친정부성향 인사의 영결식은 심지어 에스코트까지 하면서 보호해주더니, 우파단체의 시위는 방역수칙에 맞게 해도 원천봉쇄하려 한다"고 경찰을 비난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법치 유린… 해도 해도 너무해"

    "공권력의 정당성은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에서 나온다. 또 국민의 상식에서도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서 변호사는 "하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문 정권을 비판하는 집회만 적극적으로 봉쇄해온 서울시와 경찰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법을 유린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