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원 "요구대로 의심 없이 해줬다" 회피성 발언… 재판부 "업무를 그런 식으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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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사기 사건에 연루된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가 9일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 등의 재판에서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자, 재판부는 "허위성을 인식하고도 운용사(옵티머스) 요구대로 펀드 내역서에 기재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허선아)는 이날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와 이동열 트러스트올 대표, 윤석호 변호사, 유현권 스킨앤스킨 총괄고문, 송상희 옵티머스 사내이사 등 5명의 속행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예탁결제원 소속 최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펀드 자산을 평가해 기준가를 산정하는 예탁결제원은 2017년 6월 옵티머스의 요구에 따라 위험한 비상장 회사의 사모 사채를 아무런 확인 없이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바꿔줬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란 업체가 공공기관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갖는 돈을 받을 권리로, 업체는 공공기관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기 전이라면 이 매출채권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공공기관이 돈을 떼먹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안전성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분류된다. 

    옵티머스는 LH공사·한국도로공사 등 17개 공공기관의 매출채권에 투자했다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최씨 "옵티머스 부사장이 LH 채권으로 해달라 했다"

    이와 관련, 최씨는 이날 법정에서 "예탁결제원은 펀드의 기준가를 산출하는 일을 한다"며 "옵티머스가 제공한 정보를 입력해, 옵티머스의 요청대로 종목코드를 생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송상희(옵티머스 사내이사)가 부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바꿔줬고, 그 부사장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공공기관 산하 매출채권을 샀는데 사모 사채로 포장했고, 이건 아무 의미가 없으니 그냥 LH 채권으로 해주면 된다'고 해서 아무 의심 없이 등록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통화했다던 부사장이 누구인지는 특정하지 못했다. 

    이에 검찰이 "왜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우리는 기준가격 산출 업무만 하기 때문에 위임자 요청대로 기준 산출을 했다. 별다른 의심이나 이런 것은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최씨의 이 같은 주장은 사무관리를 위탁받은 예탁결제원으로서는 펀드 편입 자산을 대조·확인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다. 

    예탁결제원은 앞서 옵티머스 사기 사건이 불거진 이후부터 줄곧 "사무관리회사는 편입자산을 대조하고 확인할 의무가 없다. 자산운용사와 맺은 계약대로 기준가 계산만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최씨는 검찰 주신문에 이어진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재판부 "단순계산만 하면 예탁원이 있는 의미 뭐냐"

    이에 재판부의 의구심은 계속됐다. 재판부는 최씨에게 "옵티머스가 개설한 펀드가 굉장히 많은데 모든 업무를 그런 식으로 처리했느냐"며 "그럼 운용사들이 예탁결제원에 위임하는 취지가 뭔가. 예탁결제원이 위임을 받음으로써 얻는 효과는 또 뭔가"라고 물었다. 

    모든 질문에 일관된 취지의 답변을 이어가던 최씨는 긴장한 듯 처음으로 말을 더듬으며 "입사한 지 4년밖에 안 돼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사무관리사들은 자본력이 영세한 업체들이 자본시장에 들어와 펀드를 운용할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사장과 통화 내용대로라면 예탁결제원은 이미 사모 사채는 포장이고 실제로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다, 즉 허위성을 인식하고도 등록해준 건가. 그게 일반적인가"라고 물었다. 최씨는 "옵티머스에서 관리의 목적이라고 답해서 의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재차 "의심이 아니라 확실히 허위라는 게 드러났는데도 운용사(옵티머스) 요구대로 해주는 것이 일반적인지를 묻는 것"이라고 추궁했다. 

    이에 최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실제가격‧이자율만으로 가치 평가, 말 안 된다"

    재판부는 이후에도 "증인 말대로라면 예탁원의 업무는 가치 평가에 한정되기 때문에 진위 여부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채권 내용의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가치 평가가 되는 것 아니냐" "실제 가격과 이자율만 가지고 가치 평가를 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등 질문을 이어갔다. 

    최씨는 "예탁원은 단순히 기준가격 산출을 위한 단순계산 업무만 한다"고 되풀이했다. 

    한편 옵티머스 사건은 역대 최악의 사기사건으로, 정·관계 및 금융권 인사들이 대거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옵티머스는 투자 관련 사업경력도 없는 김 대표가 운영하는 소규모 자산운용사임에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양호 전 나라은행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고문단에 속했다. 이들은 옵티머스와 정‧관계, 금융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특히 NH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은 허위 매출채권에 기반한 펀드를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상품'이라며 팔았다. 또 예탁결제원은 옵티머스가 투자한 위험한 사모 사채를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기입해줬다. 검찰은 방대한 정황들에 연결고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