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공화당 최고위원 사직… '北 인권활동가' '국제변호사' '정당생활 3년' 등 소회
  • ▲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본지와 만난 인지연(사진)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정상윤 기자
    ▲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본지와 만난 인지연(사진)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정상윤 기자
    "끔찍하게 살고 있는 북한주민의 해방에 기여하자. 이런 마음을 품게 됐다.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보고 난 뒤였다."

    지난 3년간 아스팔트우파 활동을 지원하던 인지연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그가 지난달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았다. 전당대회(7월4일)에서 득표율 1위로 최고위원 직함을 단 지 불과 5개월여 만이다. 수석대변인으로 당의 스피커 역할도 충실히 한 그였다. 당원들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변호사시험 준비하면서도 北인권 활동

    인 전 최고위원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북한인권 활동가였다. 정치권에 몸담게 된 계기도 북한인권이었다.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1인시위를 주도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이 7년 전 가을. 미국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의 주도로 '북한인권법통과를위한모임(NANK·Now Act for North Koreans)'이라는 비영리단체(NGO)가 만들어진 해이기도 했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본지와 만난 인 전 최고위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100일간 북한인권법 통과 캠페인을 하겠다는 글을 무턱대고 페이스북에 올려놨다. 20일쯤 지났을까.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해야 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둘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냈다. 국민 앞에 한 100일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매일 두 시간씩 동아일보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여기에 700여 명의 국민이 릴레이로 참여했다. 그랬으니 시험에서 붙을 리 있겠나. 두 번째 시험도 떨어졌다. 그제야 세 번째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2016년 3월 결국 북한인권법이 제정됐다. 인 전 최고위원이 만든 NANK가 2015년 통일부 산하 비영리 단체로 등록된 뒤였다. 문재인정부 들어 사문화된 북한인권법에, 그가 연신 안타까움을 내뱉은 이유다.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인생 바꿔

    그가 이토록 '북한인권 활동'에 빠져든 계기는 무엇일까. '2006년 4월19일, 성남아트홀.' 그는 이때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규정했다. 21세기에도 북한인권 상황이 처참하다는 사실을 이 뮤지컬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그때까지 북한의 상황을 몰랐던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작품이라고도 소개했다.  

    "저는 90년대 학번, 70년대 생이에요. 국민학교 때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죠. 그런데 지금은 21세기잖아요.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21세기에도 북한은 왜 저 모양인가 하는 충격을 받았어요."

    그는 그제야 북한의 인권상황을 알게 됐고, 무지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안타까움에 뮤지컬 리뷰를 남겼다는 인 전 최고위원. 그는 리뷰를 쓰는 과정에서 '강철환'이라는 탈북자의 존재와 의미, 천기원 목사가 대표로 있는 '두리하나'라는 탈북자 지원단체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자원봉사로 이어졌다. 인 전 최고위원은 '두리하나'에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든 도와드리고 싶다'고 제의했다.
  • ▲ 인지연(사진)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정상윤 기자
    ▲ 인지연(사진)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정상윤 기자
    "(북한자유연합 대표인) 수잔 숄티 등 세계 각지에서 유명인들의 서신이 왔어요. 하지만 당시까지 두리하나에는 영어를 할 수 있는 봉사자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봉사하다 보니 '굳이 자원봉사로만 끝날 일이 뭔가, 북한인권을 위해 제대로 한번 활동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 전 최고위원의 '집회 DNA'는 이 무렵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011년 8월.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된 북한인권문화제를 기획한 것도 그였다.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팀 인턴을 겸임하던 당시, 그는 8개 단체를 모아 '서울 심장부에서 북한인권을 외쳐봅시다'라며 북한인권문화제를 개최했다. 

    그는 서울광장에 집회신고를 한 뒤 <김정일리아>라는, 김정일(북한 국방위원장)을 비판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문화제를 열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또는 불운하게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했어요. 당시 정동영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부터 '(문화제를) 안 하면 안 되느냐'는 전화까지 받았죠."

    그러나 결국 민주노총 집회는 개최됐고, 당일 이정희·유시민 등 일부 정치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분열된 대한민국이 축소된 모습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북한인권과 박근혜 탄핵 빼놓고는 말할 수 없어"

    북한인권운동가이자 변호사인 그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2013년부터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온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2015년 가을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를 위한 전시회를 진행했어요. 당시 여러 정치인이 힘을 보태줬습니다." 

    북한인권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는 'NGO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 계기가 생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었다. 인 전 최고위원의 말이다. 

    "탄핵은 잘못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된 2017년 3월, 무모하게 창당선언을 했다. NGO는 바람잡이만 할 수 있을 뿐 정치적 실행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정당을 만들어 권력을 쟁취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창당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무렵, 대한애국당 창당 소식이 들려왔다. '저분들의 애국심이라면 힘을 보탤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함께하기로 했다. 2017년 8월30일 창당 때부터 태극기동지들과 함께 '정치인 인지연'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문재인정권 규탄을 매주 외쳤다.  
  • ▲ 인지연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이 현재 정치 행위의 일환으로 '문재인 퇴진' 이라는 글귀가 적힌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제공=자유인
    ▲ 인지연 전 우리공화당 최고위원이 현재 정치 행위의 일환으로 '문재인 퇴진' 이라는 글귀가 적힌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제공=자유인
    "당직을 놓은 이유? 행동으로 증명할 것"… '접착제' 역할 강조 

    그랬던 그가 지난달 모든 당직을 내려놓았다. 인 전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공화당은 대단한 당이다. 당원 90%가 생애 최초로 정당에 입당한 분들이다. 당원만 45만여 명이다. 당원의 스펙트럼도 넓다. 창당일부터 늘 했던 생각은 '당이 집권하는 날까지 당에 몸담고 있겠지만, 행여나 그 전에 (활동을) 중단하더라도 당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행동으로 표현하겠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인 전 최고위원은 현재 정치적 성격의 사업을 운영한다. 그는 '자유인'이라는 사업체를 만들어 '문재인 퇴진' 글귀가 적힌 마스크 등의 굿즈를 판매한다. 국민들이 마스크를 통해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도록 하고 싶어서다. 정권을 규탄하는 내용, 성경 구절 등 다양한 글귀가 적힌 상품을 준비 중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정치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무너져가는 나라를 위한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보수우파 진영의 접착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애국진영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어디든 가서 이런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산산조각난 우파진영에서 영업맨처럼 돌아다니면서 (서로) 이어주는 역할이죠. 이게 진짜 정치 아닐까 싶습니다. 매번 이벤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판에서 서로 화합해 같이 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 그 방법을 궁리해보고 싶습니다. 나머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