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 장외투쟁'으로 152석 열린우리당 누른 박근혜 리더십 본받아야
  •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말 그대로 손발은 꽁꽁 묶였고, 대책은 전무했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이 시작된 지난해 4월부터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정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이 '4+1 협의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조직을 만들어 513조원 규모의 예산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에 이르기까지 쟁점법안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동안, 한국당이 한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 그 자체였다. 

    지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한국당 의원들은 패배감에 휩싸여 자포자기 상태에 놓였다. 

    손발 묶이고 대책은 전무, 사실상 자포자기

    민주당과 군소정당이 참여한 '4+1 협의체'는 9일 밤 본회의를 열어 민생법안 198건을 통과시키고 패스트트랙 마지막 법안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 2개 법안 중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완전히 '패싱(passing)' 됐다. 

    당초 한국당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했지만, 본회의 자체를 '보이콧(boycott)' 하면서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료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완패한 이유에 대해 "숫자에서 밀리니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협상을 통한 의회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고 일방적으로 법안 처리를 강행한 쪽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4+1 협의체'라는 희한한 조직체, 즉 이건 밀어붙인 사람의 잘못"이라며 "자기네들이 수적으로 우위라고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그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정말 죽기 살기로 처절하게 막았나?"

    그러나 황 대표의 리더십 부재에서 패배의 원인을 찾는 시각도 적지 않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본지와 통화에서 "밀어붙이는 쪽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데 무슨 수가 있겠느냐"면서도 "그런데 과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정말 죽기 살기로 처절하게 막았느냐? 그렇지 않았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지나치게 (저지)할 경우 나중에 소송에 걸리고 의원직 상실될 수도 있으니 몸을 사린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황 대표의 리더십이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리더십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12월13일부터 53일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추진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장외투쟁을 벌였고, 결국 열린우리당은 법안 재개정에 합의했다. 

    이 투쟁 이후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2석, 2008년 총선에서 과반인 153석을 휩쓰는 등 선거마다 대승했다. 이듬해인 2007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황 평론가는 "2004년 사학법 개정안을 추진하던 열린우리당의 의석이 152석이었다. 그때는 국회선진화법도 없었다"며 "일방적으로 통과시킬 수도 있었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가 53일간 장외투쟁을 하면서 결국은 무효화됐다. 그런 부분에서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은 그당시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에 비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12월 나경원 원내대표가 황 대표와 불협화음으로 임기 연장에 실패한 채 물러난 것을 두고도 "전쟁 중에는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 법인데 지도부가 당의 내분을 자초했다"는 말이 나온다. 

    "대책 있겠나, 선거에서 이기는 수밖에"

    패스트트랙 3법 통과를 목전에 둔 민주당은 오는 13일 본회의를 열어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 국무총리 인준투표 등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이를 저지할 대책 마련에 사실상 손을 놨다. 한국당은 10일 원내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에 대한 구체적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한국당 핵심관계자는 "이미 패스트트랙 법안 3개 중 2개가 통과됐는데 대책이란 게 있겠느냐"며 "결국 선거에서 이겨 되돌리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