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정경심에게도 안 채운 수갑… 주거 일정하고, 고령에, 도주 우려도 없는 종교인에 채워
  • ▲ 경찰이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목사에게 근거 규정 없이 수갑을 채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윤 기자
    ▲ 경찰이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목사에게 근거 규정 없이 수갑을 채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윤 기자
    경찰이 전광훈(64)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게 근거규정 없이 수갑을 채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 목사가 2일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직후 수갑을 찬 채 서울 종로경찰서로 이동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전 목사는 지난해 집회에서 폭력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구인영장이 있는 만큼, 강제연행하기 위해 호송규칙 등 근거규정에 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이 근거로 든 경찰청훈령에는 전 목사 사례에 해당하는 조항이 없다. "경찰청훈령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기준이 들쑥날쑥"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논란은 2일 오후 1시쯤 전 목사가 수갑을 찬 모습으로 영장실질심사 뒤 법정에서 나오면서 불거졌다. 전 목사는 이날 오전 10시17분 법원에 도착해, 오전 10시30분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전 목사는 영장실질심사 뒤 수갑을 찬 채 서울 종로경찰서로 이동했다. 현재는 종로서 유치장에 대기 중이다. 

    종로경찰서 측은 근거규정에 따라 '구인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수갑을 채웠다'고 밝혔다. 장영식 종로서 수사과장은 2일 본지에 "호송규칙에 따라 수갑을 채웠고, 규정에 그렇게 돼 있다"며 "정확한 조항은 모르지만, 이 규칙을 근거로 구인영장을 집행하는 사람은 강제연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의자 등의 호송 내용을 규정한 경찰청훈령은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경찰청훈령 제883호)'이다. 

    경찰청훈령 등이 근거규정... 전광훈 목사에는 해당 안 돼

    이 규칙 22조에 따르면 ①송치, 출정 및 병원진료 등으로 유치장 외의 장소로 유치인을 호송하는 때, 출감할 때 ②도주하거나 도주하려는 때 ③자살 또는 자해하거나 하려는 때 ④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하려는 때 ⑤유치장 등의 시설 또는 물건을 손괴하거나 하려는 경우 등에 한해 수갑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관이 ①의 사유로 수갑 등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구류 선고 및 감치 명령을 받은 자와 고령자·장애인·임산부 및 환자 중 주거와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는 자'에 대해서는 수갑을 채우지 않아야 한다.  

    전광훈 목사, 주거 일정하고 고령... 도주 우려도 없어

    같은 규칙 제50조의 규정도 전 목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50조 1항은 '호송관은 호송관서를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피호송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포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때 호송관은 피호송자의 호송을 담당하는 경찰관, 호송관서는 피호송자를 호송하려는 경찰관서를 말한다. 

    그런데 이 조항에는 '구류 선고 및 감치 명령을 받은 자와 고령자·장애인·임산부 및 환자 중 주거와 신분이 일정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는 자에 대해서는 수갑 등을 채우지 않는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전 목사가 △고령인 점 △도주 우려가 없는 점 △주거와 신분이 일정한 점 등의 사유로 이 조항 역시 전 목사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 기준'에도 전 목사 해당 안 돼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역시 전 목사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규정 제4조는 '경찰관은 체포, 구속영장을 집행하거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판결 또는 처분을 받은 자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호송하거나 수용하기 위해 필요한 때에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수갑·포승 또는 호송용 포승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전 목사는 아직 체포, 구속영장 관련 판결 또는 처분을 받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 전직 경찰서장은 "근거규정은 호송규칙 22조로, 이 조항의 '유치장 외의 장소로 유치인을 호송하는 때와 조사 등으로 출감할 때'의 의미는 유치장 안에서는 수갑을 안 채우지만, 유치장 외의 장소로 갈 때는 수갑을 채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다만 "인권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혔다.  

    법조계, 훈령 기준 적용과 규정 내용 모호성 지적 

    법조계에서는 근거규정이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회 회장)는 "근거규정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규정이 모든 피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했는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재수 전 장군 같은 경우도 당시 (수갑을 채워) 인권침해 아니냐는 등의 논란이 많았다"며 "조국 전 장관, 정경심 교수 등도 수갑을 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명백히 도주 우려가 있는 게 아니라면 수갑까지 채워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이날 구속전피의자심문에 나와  "나는 도망가지도 않고, 증거를 인멸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형사 전문 강민구 변호사는 "구인영장이니 수갑 착용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문제는 일부 피의자에게는 수갑을 채우고 일부에게는 수갑을 채우지 않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나, 김경수·안희정 등 정치인들에게는 수갑을 안 채우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형사소송법에도 구인영장 집행시 수갑 착용 여부에 명문규정이 없어 예규 등 행정명령으로 규율하는 것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강 변호사는 덧붙였다. 

    경찰의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에는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울 수 있는 근거가 명확히 적시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정욱 변호사는 "규정에 나온 '출정'이라는 건 이미 구속된 피의자가 법원으로 재판이나 수사를 받기 위해 가는 걸 의미한다"며 "이같이 근거규정 중 전 목사의 경우에 딱 맞는, 수갑을 채우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도 "(경찰이 수갑을 채우기 위한 근거로 보는) 위험성 등 판단이 자의적이라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양윤숙 변호사는 "수갑 등을 사용하는 것은 신체의 자유 등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어 헌법상 비례원칙에 따라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필요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전 목사는 고령이고, 도주 우려가 없고, 신분이 확실한데 굳이 이동하면서 수갑을 꼭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없지 않으냐" 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그런데도 수갑을 사용한 것은 인권보장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지난해 10월3일 광화문집회에서 폭력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해 12월26일 전 목사 등 3명에 대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하루 뒤인 27일 전 목사 등 2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