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대법원 수석연구관, ‘사법농단’ 재판 증인 출석… 檢 질문에 “기억나지 않아”
  •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3일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상윤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3일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상윤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윗선 개입’ 등에 대한 검찰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  "관행이었다"며 관련 의혹을 대체적으로 부인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을 연결하는 ‘중간고리’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전교조 재항고사건 등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증인신문에서는 "재판장이 대법원장인 사건에서 재판장이 지시를 내리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요 사건 챙겼을 것 같다"는 검찰에… 유해용 “증거 있다면 확인해라” 면박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의 25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유 전 연구관은 이날 11시20분쯤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 전 연구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을 지냈다. 2016년 2월부터는 1년간 수석재판연구관 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판결, 전교조 법외노조사건, 통합진보당 소송 등 주요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재판 거래’ 여부를 중점 신문했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 처장) 등 ‘윗선의 개입이나 지시’가 있었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유 전 연구관은 ‘원 전 국정원장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경위와 이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김어준 사건’ 등에 대한 검찰의 질문에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의견을 묻는 질문으로, 부적절한 것 같다” 등으로 답했다.

    “당시 증인이나 다른 총괄 재판연구관이 신현일 (당시) 원세훈 사건 재판연구관에게 원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문건을 출력해서 전달하는 게 통상적인 것이냐”는 검찰 질문에는 “그것 자체는 드문 일이고, 굳이 기억이 불확실한데 자꾸 추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후에 속개된 재판에서도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의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는 주진우·김어준 사건에 대해 검찰이 “중요 사건으로 선임이 관심을 가지고 챙겨봤을 것 같다”고 말하자 “기억할 수 없고, 압수수색으로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2014년 11월19일 전교조 재항고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총괄연구원에게 보고받은 사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기억을 못 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답했다. 검찰이 기억을 환기시키는 증거를 제시하면 "착각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윗선 개입, 지시’ 여부에… “일상적 업무였다”

    '윗선의 개입, 지시 여부'에 대해서도 유 전 연구관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찰은 “제시된 검토문건은 전교조 재항고 사건을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걸로 결론내리는데, 당시 박병대 처장이 파기환송 가능성을 전제로 교원노조법 합헌 여부를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유 전 연구관은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검찰의 "5월28일 헌법재판소가 교원노조법 합헌 결정한 직후 양 대법원장이 이런 결정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시를 내린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억을 못 하고 있고, 다만 조사과정에서 다른 연구관들의 이메일을 보고 확인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양 대법원장이 내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말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을 검토하라는 지시는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유 전 연구관은 "전교조 외에 양 대법원장에게 특정 사건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시받은 적 있느냐"는 검찰 질문에 "그건 일상적 업무"라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은 대법원장이다. 

    유 전 연구관이 "기억에 없다"는 답변을 이어가자 검찰은 "전교조 재항고 사건과 관련한 자료 요구 등은 사법행정권자가 개입하는 것으로, 부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유 전 연구관은 이 역시 "기억 자체가 없어서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이날 검찰은 향후 주4회 공판을 진행하자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을 이대로 진행하면 기소(2월) 이후 2년이 지나서야 1심 선고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그러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재판부는 "주 4회 공판을 진행한다고 해서 증인들이 모두 나오는 등 재판이 효율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며 판단을 유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