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체포영상 언론 유출로 '피의사실 공표' 논란 확산… 처벌 사례 없어 해석 분분
  • ▲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습.ⓒSBS 보도화면 캡쳐
    ▲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습.ⓒSBS 보도화면 캡쳐
    검찰·경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둘러싸고 위법 논란이 확산됐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4) 체포 영상이 유출된 경위를 경찰이 조사하기로 하면서다. 그동안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관행적으로 인정됐다. 처벌 사례도 없다.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어디까지 위법인지 법조계 의견을 들어봤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찰관과 검찰 관계자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이뤄질 예정이다. △경찰이 고유정 체포 영상을 유출한 경위 △‘1월 울산 약사면허증 위조사건’ 범죄자를 구속하며 보도자료를 낸 울산 경찰관들에 대한 검찰 수사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녀 KT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을 고소한 것 등이다. 모두 ‘피의사실 공표’가 발단이 됐다. 

    현행법은 범죄자의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알리는 행위를 금한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경찰, 기타 범죄수사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보조하는 자가 직무를 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형사소송법 제198조 2항에도 ‘검사·사법경찰관리와 그밖에 수사 관계자가 피의자 또는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과정상 취득한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A가 살인용의자”도 피의사실 공표… 근거법은 사문화  

    그렇다면 우리 사법부가 인정하는 ‘피의사실’은 어디까지일까. 대법원 판례(2009다51271) 등 사법부는 피의사실을 설명할 때 ‘범죄사실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면 안 된다’고 본다. 가령 “A가 살인용의자”라는 사실만 밝혀도 피의사실 공표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다만 ‘단순 의견표명 정도라면 피의사실 공표라고 볼 수 없다’고 사법부는 판단한다.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법대로 기소된 이후 피의사실을 알린 거라면 문제 없다’ ‘피의사실 법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에 이번 논란도 문제 없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정당하다면 위법성이 없어질 수 있다’ 등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하기에는 모호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익명을 요청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범죄자를 기소하기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문제가 되는데, 고유정 같은 경우 기소 이후 영상을 공개한 거라서 피의사실 공표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그동안 경찰은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보도자료 등을 발표했고, 검찰도 피의자를 기소한 직후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기소 직전에 하더라도 언론사에 엠바고를 걸어 피의사실을 알려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사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도 법에서 정한 피의사실 공표죄 구성 요건에 해당될 여지가 있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관행적으로 (피의사실 공표를) 굳이 문제 삼지 않아 왔다”면서 “엄밀히 말하면 수사 입장에서는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법이 사문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 사건을 두고는 굉장히 이례적이라고도 부연했다. 
  • ▲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2일 자신에 대한 '자녀 KT 부정채용 의혹'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했다.ⓒ정상윤 기자
    ▲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2일 자신에 대한 '자녀 KT 부정채용 의혹'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했다.ⓒ정상윤 기자
    피의사실 공표 관행적이었는데…

    이 변호사는 이런 이유로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된 전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어느 부분까지 위법하다고 봐야 할지 모호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대검이 (피의사실 공표 관련) 외부인사가 포함된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심의 자체를 한 게 처음이고,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된 경우도 처음이라서 향후 나올 울산사건에 대한 판례가 '리딩(leading) 케이스'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수사기관이 검찰에 송치한 뒤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관행은 피의사실 공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학계에서 주로 나온 의견”이라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다른 법조계 인사들도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수사기관의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관련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피의사실을 흘리는 행위가 정당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당행위’ 여부 쟁점될 듯”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우리 법은 피의사실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데, 과거 검찰이나 경찰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흘리거나 발표한 것도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면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면서 “다만 그동안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수사기관이 관행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해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그러나 국민이 범죄자의 피의사실을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강모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는 범죄 예방,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측면에서 순기능이 있고, 이 때문에 관련법이 사실상 사문화됐고 관행적으로 피의사실 공표를 인정했다”면서 “최근 문제된 울산경찰 등 사건이 재판까지 간다면 ‘어디까지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가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사건별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고유정 체포 영상은 기소 이후 유출됐기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다만 울산 경찰의 경우나 김성태 의원 관련 내용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