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범죄 의도 증명 안돼”... 대법원 “경찰관인줄 알았다면 범죄 행위 인식”
  • ▲ 만취 상태에서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대학생에게 대법원이 최근 유죄를 선고했다.ⓒ정상윤 기자
    ▲ 만취 상태에서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대학생에게 대법원이 최근 유죄를 선고했다.ⓒ정상윤 기자
    대법원이 만취 상태에서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20대 대학생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이 하급심 원심을 깨고 유죄를 인정한 이유는 뭘까.

    대법원 형사2부(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26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대학생 A씨에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7년 12월 12일 밤, 술에 취해 청주 한 빌라에서 난동을 부렸다. 경찰관 2명은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A씨는 당시 만취 상태로 동료와 말다툼을 벌이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이런 A씨를 제지하고 차에 태우려고 하자, 그는 경찰관의 얼굴을 때렸다. A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이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뒤,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출동한 사람이 경찰이고, 경찰이 공무집행 중이라는 사실에 대한 범의(犯意)가 있었다고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범의는 '범죄행위인줄 알면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사'를 의미한다. A씨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경찰관의 얼굴을 때렸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형법 13조(범의)가 근거 규정이다. 형사소송법 325조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마찬가지 취지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A씨의 일관된 진술 등을 근거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했다. A씨가 경찰관의 얼굴을 때리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무죄 내린 이유는?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다르게 해석했다. 대법원이 유죄를 내린 취지는 크게 두 가지다. △A씨가 경찰관을 인지했다는 점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범의가 이 사건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먼저 A씨가 경찰관을 인지했다고 본 근거는 이렇다. 대법원은 출동한 경찰관들이 A씨에게 경찰관임을 알려줬다고 설명한다. 또 경찰관이 A씨에게 ‘경찰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형사입건될 수 있다’고 말하자, A씨가 진정된 모습을 비쳤다고도 했다. 

    이에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A씨가 당시 경찰관으로 인식할 수는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또 “A씨가 경찰관을 때릴 당시 인사불성 상태였다고 보이지 않고, 당시 경찰관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다음, A씨가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있었느냐가 문제다. 대법원은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범의는 인식이 불확정적이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으면 성립한다”고 전했다. 자신의 행위 때문에 범죄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질렀을 때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단이 앞으로 비슷한 사건에 영향을 미칠 지는 미지수다. 김모 변호사는 “(판결은) 해석의 문제인데, 이번 판결을 가지고 앞으로 (비슷하게) 판결이 나온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