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청와대 견제 못해" 실망감… "이대로 가면 총선 당선 위기" 우려도 한몫
  •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김태년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새 원내대표에 당선되자 '이제는 친문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표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 방침을 그대로 따랐던 기존 지도부와 달리 ‘당의 주도성’을 강조한 이인영 체제에선 새로운 당청관계가 설정될 전망이다. 

    이번 민주당 원내대표선거에서 초반에는 친문 주류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김 의원이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는 이해찬 대표와 가까운 김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친문 일색으로 당이 꾸려져 내년 총선에서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신임 이 원내대표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이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을 대표하는 '운동권 맏형'인 그는 계파 색채가 옅은 의원들과도 두루 친분이 깊다. 그가 핵심 친문인 김 의원을 1차 투표에서 17표, 결선 투표에서 27표 차이로 여유있게 이긴 것은 선거를 앞두고 확보한 조직력이 유효했다는 평가다.

    민주당 내에선 이미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때부터 '청와대출장소'라는 오명을 씻고 당청관계에 변화를 원하는 마음이 '강한 여당'을 표방한 이해찬 대표의 당선으로 연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취임 후 현재까지 청와대를 향해 이렇다 할 뚜렷한 견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는 실망감이 적지 않게 표출됐다.

    정권 3년차, 사라진 '친문 쏠림' 현상

    반면 이 원내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변화와 혁신’에 방점을 찍었고, 집권 3년차인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면서도 청와대와 거리를 적절히 조절하겠다고 자신했다. 또 당정협의에서 국회 상임위 중심 정책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2015년 당대표선거에 출마해 3위로 낙선했지만, 문재인·박지원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했던 경험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원내대표의 당선을 보며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주류인 유승민 의원의 당선을 떠올리는 분위기다. 그때도 집권 3년차였고, 지금처럼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이었으며, 민심의 변화 조짐을 인식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친박 패권주의에 떠밀려 가다가는 총선이 어렵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GT계, 개혁그룹, 부엉이모임의 지지받아

    이번 선거에서 2위에 머무른 김 의원은 친노·친문 좌장인 이 대표 측의 지지를 받은 반면 이 원내대표는 고 김근태 의원 계열(GT계)인 민평련과 당내 개혁그룹인 ‘더좋은미래’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해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초·재선 친문 의원 그룹인 '부엉이모임'(40여 명 규모)의 지지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그룹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가 아닌 김진표 의원을 밀었다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정치 입문 과정에서 이 원내대표의 도움을 받았다는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1987년 항쟁 후 30년이 지난 지금 386 세력의 세대교체가 올 때가 됐는데, 386 맏형인 이인영 선배가 그동안 뚜렷한 요직을 맡지 않아서 후배들이 원내대표로 추대해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 이인영 신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첫 정책조정회의를 갖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이인영 신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첫 정책조정회의를 갖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분화한 친문, '변화와 혁신' 비주류 이인영 택했다

    당내에서는 이 원내대표의 당선 배경으로 이해찬 당대표에 대한 견제심리가 강하게 작동한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대표의 독주를 견제하고 세대교체를 원하는 등 ‘친문의 분화’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해찬 대표 휘하의 지도부에 줄을 대는 것만이 이익이 되는 길이 아니게 됐다"며 "이인영 원내대표도 내년 총선엔 '자기 사람' 챙기는 모습을 어떤 식으로든지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원내대표는 일단 이 대표와 옛 친분을 강조하면서 항간의 우려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그는 9일 당 행사에서 "이해찬 대표님 옆에 앉아 보좌하니 너무 기쁘고 옛날 생각이 난다. 잘 모시고 멋진 민주당의 모습을 만들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987년 6월항쟁 때 국민운동본부에서 일한 과거가 있다. 이후에는 각자 나름의 정치적 길을 걸어왔다.

    전대협 전성시대... 靑 출신과 공천경쟁 신호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로 민주당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나왔다.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정부여당 전·현직에 포진한 전대협 출신 인물들로는 의장 출신인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3기)과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2기), 송갑석 민주당 의원(4기)이 있으며,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대협 부의장(1기) 출신이다. 전대협 1~4기 의장단이 모두 '한 자리'를 차지한 경력이 있는 셈이다.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당내 역학구도에 대해 의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 40여 명이 공천을 받기 위해 대거 몰려온다는 얘기가 있다. 당내에선 그들의 '공천 잠식'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신(新) 친문'으로 분류되는 청와대 1기 참모들이 대거 당으로 복귀한 상황에서, 총선을 친문 일색으로 치르기는 어렵다는 현역의원들의 위기감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이 원내대표를 원내 사령탑으로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더미래 소속 한 의원은 "결국 우리에겐 공천 앞에 장사 없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비교적 친문 색채가 옅은 인물인 김영호 의원을 원내부대표로, 원내대변인에는 초선 박찬대·정춘숙 의원을 각각 내정했다. 

    이 원내대표는 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개인적으로 민생을 살릴 수 있다면 경우에 따라선 야당이 주도하는 것도 좋다”며 “(민생을 위해) 절박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인들과 말 잘 듣고, 부드럽고, 따뜻한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아직 좀 까칠한 것이 완전히 가셔지지는 않았다. 좀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자신의 고유한 성품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