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트루스포럼 강연 "김정은 文에게 '냉면'보다 더한 갑질…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워"
  • ▲ 태영호 전 주영(駐英)북한공사. ⓒ뉴데일리 DB
    ▲ 태영호 전 주영(駐英)북한공사. ⓒ뉴데일리 DB
    "남북의 대결은 다원성과 단일성의 대결이며, 저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다원성이 이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억압적, 획일적이며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총살하는 북한 시스템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게 대단히 아름답게 보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대학생들이 저를 체포하겠다는 의사 표시도 할 수 있고, '체포 결사대'도 만들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지 보십시오. 그들이 북한에 있다면 가능할까요. 나는 다원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고, 대한민국이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야 더 살기 좋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2일 저녁 서울 관악구 소재 서울대학교 관악사. 연단에 선 태영호 전 주영(駐英)북한공사가 최근 자신을 체포하겠다며 전국을 순회한 좌파 성향 대학생 조직 '태영호 체포 결사대'에 대해 "주변에서는 고발해서 바로잡으라고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다"며 이같이 말하자 120명의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날 서울대트루스포럼은 11월 셋째 주를 '북한인권주간'으로 지정하고, 첫 행사로 태 전 공사를 초청해 강연을 맡겼다. 태 전 공사는 '북한체제에 대한 이해' 및 '김정은의 핵 전략'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태영호 "북한은 공화국이 아니라 조선 왕국"

    강연은 북한과 공산주의의 연관성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됐다. 태 전 공사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공산주의를 연결시키는데, 1960년대 초까지는 북한 경제시스템이 이전 소련이나 동유럽의 공산시스템과 비슷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주체사상이 등장하며 구조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고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은 대중을 장악하고 이끌기 위해 선발된 사람들로 조직된 당, 그 당을 지도하는 '수령'으로 귀결된다. 북한이라는 사회를 '인간'으로 봤을 때 수령은 '뇌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시스템은 수령이 하자는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태 전 공사의 설명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수령은 아무 사람들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김씨 부자만 혈통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며, 북한에선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령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에 상속이나 계승을 금하는 공산주의와 상충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공화국은 국민이 지도자를 선출할 권한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인데, 북한은 선거가 없으며 후계를 세습하기 때문에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차라리 '조선 왕국'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며 "북한이 외부에 말하는 것과 내부의 현실이 상충하는 것을 극복하려니 강제성이 동원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에 '종교의 자유' 있지만…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유물론적 사고관을 지닌 공산주의 이론은 종교를 배격 내지 탄압한다. 그러나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말살하고 있다는 것이 태 전 공사의 설명이다.

    그는 "북한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이 성경을 읽다 감옥에 잡혀가도 법대로 하자고 요구할 수 없다"며 "이는 북한의 특이한 법률구조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북한의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인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은 북한 김씨 수령에게 절대적 충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이들의 모든 사상이 기록돼 있으며 자연스럽게 북한 헌법보다 상위에 있다.

    모든 북한 주민들은 이 원칙을 전부 외우고, 이 원칙에 근거해 살아가야 한다. 태 전 공사는 "결국 북한에서는 성경을 읽다 잡혀가도 '헌법에 규정되는 권리를 왜 침해하느냐'고 말할 수 없다"며 "이것이 현재 북한 존재 존립의 기초이고, 북한 내부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핵 폐기, 한걸음도 진전 못해

    북한 김정은의 핵 보유 전략은 무엇일까. 앞서 김정은은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태 전 공사는 "지금까지 북한이 본 소련, 중국, 미국 3자간 핵 대결의 역사는 위협과 공갈의 역사"라며 "핵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미국을 향해 위협하고 공갈할 때 비로소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최근 비핵화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골자는 '선 종전선언 및 제재 해제'와 같은 조건부, 단계적 비핵화다. 핵 협상은 2가지로 나눠진다. 보유한 핵무기, 군사시설 등 모든 리스트를 작성해 처음부터 핵을 폐기하는 '비핵화 협상'과, 핵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니 갖고 있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핵 군축 협상'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생각은, 핵무기를 바탕으로 시간을 벌어서 핵무기를 기정사실화 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 바뀔 거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핵을 내려놓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체제 보장, 군사위협 제거, 관계 개선 등을 명분으로 주장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 그는 "판문점 선언 이후 반년이 지났지만 오늘 시점에서 북핵 폐기를 위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폐기를 위해선 한미중러 4개국이 하나의 원칙을 북한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을 둘러싸고 미국과 한국,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를 말하고 있지만, 어떤 방식·형식으로 핵을 폐기할 것인지 모두의 입장이 다른 것이 본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한국은 '선 남북관계 개선 후 비핵화',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비핵화 및 제재 해제 병행'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제재를 어느 시점에 풀겠냐는 것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한미일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 공격능력이 없어질 때 제재가 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 지난 9월 18일 평양 노동당 청사에서 이뤄진 남북회담 기념사진에서 웃으며 악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배경에 노동당 마크가 보인다. 19일자 노동신문은 이같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데일리 DB
    ▲ 지난 9월 18일 평양 노동당 청사에서 이뤄진 남북회담 기념사진에서 웃으며 악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배경에 노동당 마크가 보인다. 19일자 노동신문은 이같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데일리 DB
    북한, '냉면'보다 더 큰 결례 많아…국회도 움직여야

    최근 태 전 공사는 북한 리선권의 '냉면 목구멍' 발언에 대해 쓴 한 편의 칼럼에 대해 "보수 쪽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난 9월 남북회담 당시 북측 인사였던 리선권이 대한민국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며 사회 전반에서 거센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와 관련, 지난 8일 태 전 공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무례한 감은 있지만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 도발은 아니라고 본다"며 "북의 공식 사죄를 받아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문 대통령의 평양 비행장 도착 시 행사장에 인공기만 띄운 것, 평양회담 사진촬영 당시 북한 노동당 마크가 있는 배경을 이용한 것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리선권이 재벌 총수들에게 무례하게 대했다고 치더라도, 그렇다면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떻게 대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엔 '남북관계는 통일로 가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지난 4월 판문점 선언 당시 의장대 사열할 때 김정은이 넘어왔는데도 한국은 합의서에 따라 태극기를 띄우지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도 북한 김정일은 인공기를 띄우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김정은은 인공기를 띄웠다. 태 전 공사는 "어떻게 북한이 이렇게 무례할 수 있는지 우리가 이런 것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냉면만 얘기하고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양 남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당 청사에서 김정은과 노동당 마크 배경 아래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도 지적했다. 그 사진은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13년 6월 19일 개정된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제1조 4항은 이렇다. '주체사상의 기치,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해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노동당 마크를 배경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태 전 공사는 "노동당 마크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면 도발인가 아닌가"라며 "북한의 적화통일 대상이 우리인데, 이게 북한의 문화적 배경이기 때문에 여기서 웃으며 사진 찍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모르고 찍었겠지만, 김정은이 이러면 안 된다"며 "통일하자고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최소한 이런 장소는 피해야 하고, 남북 기본법은 지켜야 하는데 무시하는 것. 이처럼 더 큰 문제가 있는데 '냉면'이 너무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부연했다.

    이날 오후 6시 40분부터 진행된 강연회는 저녁 9시까지 이어졌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참석자 120여명은 태 전 공사의 발언에 중간중간 탄식도 하고, 환호 및 박수를 아낌 없이 보내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서울대트루스포럼의 '북한인권주간' 행사는 이날 태 전 공사의 강연을 시작으로 13일과 14일 서울대 자하연에서 '북한인권 사진전'을, 16일에는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탈북민 출신 김규민 감독을 초청해 북한인권영화 '겨울나비'상영회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