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 속였다"… '원전 백지화' 영덕의 절규

"7년 기다리게 해놓고 일방적 취소" 재산권 규제 주민들 '발동동'… 바른미래, 결의안 내기로

이유림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7.11 18:55:07

"적폐 한수원장, 적폐 산자부 장관은 물러나라!"

지난 10일 오후 3시경 경북 영덕군 영덕읍 동쪽 해안가 산비탈 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자 100여 명의 노인들이 "적폐 장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갑작스러운 에너지 정책 전환으로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는 영덕읍 주민들이었다. 원래 이곳에는 천지원전 1·2호기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원전 건설 계획을 갑자기 취소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부른 것이다. 

김동철 비대위원장, 정운천 민생특위 총괄위원장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10일 경북 영덕 천지원전 부지를 찾아 지역주민과 관계 부처의 의견을 청취했다. 뙤약볕 아래서 오랫동안 국회의원 일행을 기다린 70~80대 고령의 주민들은 "남은 건 좌절과 분노, 원망과 분열 뿐"이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대게로 유명한 영덕 지역 민심은 천지원전 백지화로 산산조각이 나 있는듯 보였다. 

▲ 10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한수원 한울본부 천지원전 건설 사무실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현장 정책워크숍 ‘경북 영덕 천지원전 주민간담회’에서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DB

◆ 7년을 기다렸는데... '느닷없이' 백지화

당초 정부는 영덕에 신규 원전인 천지원전을 2027년까지 건설하겠다고 계획했다. 2012년 영덕읍 천지산 일대 98만여 평을 원전 예정구역으로 고시하고, 사업부지에 대한 보상계획도 공고했다. 사실상 원전 건설이 확정됐던 셈이다. 이에 주민들은 수년간 부지매매 및 건물 증·개축 등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았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탈원전 정책'을 펴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6기의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중 천지원전 1·2호기를 포함한 4기 건설 사업을 백지화했다. 한수원은 원전 부지의 약 20%를 매입했지만, 정부 정책이 바뀌자 남은 80% 부지는 매입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영덕군에 이미 지원한 원전 특별지원금 380억 원도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에 따르면, 천지원전 건설 백지화에 따른 매몰 비용은 3430억 원에 달한다.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2012년 원전 예정구역으로 고시되면서 재산권 행사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일방적으로 원전 계획을 취소하면서 그 피해를 주민들에게 전가했다는 이유였다. 주민들은 또한 "한수원이 매입한 부지 20%를 다시 공매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보상받지 못한 80% 부지 가격까지 폭락할 상황에 처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조혜선 천지원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날 현장 간담회에서 "국가 에너지 정책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건지, 또 그동안 원전 필요성과 우수성을 외치던 산자부와 한수원은 언제 그랬냐 싶게 탈원전 기수가 된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조 위원장은 "국가가 주민을 기만하고 능멸하며 7년이라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침탈하고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이제 와서 약자에 대한 일방적 손실로 전가하는 상황에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 한수원 노조위원장 "세계 최고였던 원자력이 적폐가 됐다"

이날 오전에 진행된 주민대표, 정부 측 담당자, 한수원 담당자 간 토론회에서도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성토는 계속됐다.

토론이 진행된 한수원 영덕사무소 앞에는 탈원전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뒤섞여 시위를 벌였다. 탈원전 찬성 측은 "원전 수출 기도하는 핵마피아 물러가라"는 구호를, 반대 측은 "탈원전 희생 재물 영덕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찬성측은 탈원전에 반대해 온 정운천 의원에게 "자폭하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주민대표 이광성 천지원전 비대위원장은 발언에서 "우리 주민들이 영덕에 원전 지어달라고 요구한 것 아니다"며 "정부가 보상이라도 어떻게 진행할지 분명하게 말해줘야 하는데 (안 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주민들 평균 나이가 80세다. 당장 주머니에 단돈 100만 원이 없는데, 세월 지나 내가 죽고 1억을 받으면 뭐 하겠느냐"고 물었다.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작년 촛불집회 때 이게 나라냐는 구호를 외쳤다“며 ”그런데 지금 정부의 원전 정책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이게 나라냐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는 "어느새 태양광·풍력은 선한 에너지 자원이 됐고, 원자력은 적폐가 됐다"며 "하지만 적폐라 여겨지는 원자력도 최고라 말하던 때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가 원자력 기술을 어떻게 만들었는데…"라며 "탈원전 정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버리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거듭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질책도 이어졌다. 오신환 의원은 한수원에서 34년간 근무했다는 이용희 사업본부장에게 "그동안 원전이 필요하다며 원전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분이 정권이 바뀌고 다시 원전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옳은가"라고 물었다.

이에 이용희 한수원 사업본부장은 "원전이 필요 없다는 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저희는 기업 특성상 공기업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이행하는 기관이다"라고 답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고위 공무원들조차 정부 정책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김동철 위원장은 "오늘 오신 분들이 정부 정책에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한수원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수용하려면 다음 정부가 정책 변화를 낼 수 있는 여지는 남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수원이 천지원전 부지를 매입해둬야 한다"며 "다음 정부가 원전 재개 정책을 하고 싶은데 부지가 없어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월권 아니냐"고 했다.

▲ 경북 영덕 주민들이 11일 천지 원전 부지 인근에서 원전 건설 백지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유림 기자

◆ 풍력 발전소가 대안?… "국가가 국민을 기만했다"   

현재 산업부는 영덕 천지원전 건설 취소에 따른 대책으로 신재생 에너지 클러스터 조성 등 5개 사업에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농촌 태양광, 축산 블루시티 등이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누구를 위한 대책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토론회에 참석한 지역 주민은 "풍력 발전소가 들어오면 (소음에) 시끄러워 아무도 안 올 것"이라며 "영덕 지역의 관광 발전은 고사하더라도 참새가 오던 풍경이 좋던 주민들이 이익을 보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성토했다.

정운천 의원은 이날 천지원전 백지화 대안으로 원전 수출 전략지구로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단된 천지원전 1·2호기를 재추진해 수출형 시범 원전을 개발하고, 기술입증 인프라를 확보하는 원전 수출 전진기지로 만들자는 내용이다.

정운천 의원은 "원전 정책이 졸속으로 가더라도 최소 수출만은 살려야 한다"며 "아파트 지을 때 모델 하우스를 짓듯이 전 세계 공략을 위해 수출전략기구로 지정하면 자연스레 영덕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800여 명의 미보상 민원을 메꾸고, 차세대 원천기술 그대로 확보하고, 동시에 정부 정책과도 함께 갈 수 있는 출구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 의원은 "아무리 산자위에 말해도 묵묵부답이다"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바른미래당은 이날 제시된 의견들을 정리해 이번 주 중으로 국회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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