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인 몇개 붙였느냐가 본부장'실적'… 편집부장에게 MD 시키고, 데스크에게 취재원 섭외시켜
  • ▲ 최승호 사장 취임 후 '파업 불참' 기자들의 업무 배치 현황. ⓒ뉴데일리 조현준기자.
    ▲ 최승호 사장 취임 후 '파업 불참' 기자들의 업무 배치 현황. ⓒ뉴데일리 조현준기자.

    요즘 MBC 내부에선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보도본부장을 지냈던 한 간부는 MBC의 아침 뉴스인 ‘뉴스투데이’의 과거 영상물에 색인을 붙이고 있다. 색인을 몇 개 달았는지 여부가 그의 업무 실적이다. 그의 색인 작업 횟수는 팀장에게도 보고된다. 그는 ‘뉴스 데이터팀’의 팀원이다. 

    이 사람 뿐 아니다. 전 시사제작국장도, 전 편집1센터장, 전 특파원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차부장급 이상 보도국 간부들 8명이 뉴스 데이터팀에 발령 받아, 영상물에 색인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없던 업무다. 아침 뉴스의 성격 상 저녁이나 밤 뉴스에 나간 리포트를 다시 트는 경우가 많아, 별도의 색인 작업이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뉴데일리>는 MBC 최승호 사장 부임 후 ‘파업 불참’ 기자들의 직무를 보여주는 내부 문건을 단독 입수해, 2018년 6월 기준으로 업데이트했다. 이 문건은 지난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주도한 MBC 파업에 불참한 기자들이 어떤 부서에 배치 받아,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눈에 보여준다. MBC 새 집행부의 ‘인사 전횡’을 보여주는 자료다. 

    ‘파업 불참’ 기자-앵커 85명 중 80명이 단순업무

    문건을 보면 ‘파업 불참’ 기자와 앵커 총 85명 중 5명을 제외한 80명이 뉴스 제작 과정에서 배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80명 대부분이 기존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부서로 전출돼 ‘단순 업무’에 투입돼 있는 상황이다. 80명 중 3명은 해고됐고, 3명은 직무를 박탈당했다. 부당한 인사에 저항하며 퇴사한 사람도 3명이다. 

    색인 작업 외에도, ‘파행 인사’의 양태는 다양하다. 아침 뉴스 편집부장은 라디오 주조종실 MD, 정치부 기자는 중계차 발령을 받았다. 사회부장을 지냈던 한 기자는 라디오뉴스 편집을 하고 있고, 전국부장을 지냈던 기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긴 하지만, 그렇게 작성한 기사를 다른 기자가 읽도록 넘겨줘야 한다. 주로 계약직 보조 인력들이 하던 아침뉴스의 취재원 섭외에 투입된 경우도 있다. 

    MBC의 한 직원은 "노골적인 좌천 인사”라고 규정했다. “망신을 주기 위한, 모욕적 업무 배치"란 것이다. 또 다른 직원은 "올 초에 현장에서 인터뷰를 따고 있는 ‘파업 불참’ 기자의 얼굴 한 컷이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는데 난리가 났다"는 말도 전했다. ‘파업 불참’ 기자는 방송에 얼굴을 내밀 수 없다.   

  • ▲ 지난해 9월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MBC본부의 총파업 돌입 출정식 현장.ⓒ뉴데일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난해 9월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MBC본부의 총파업 돌입 출정식 현장.ⓒ뉴데일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파업 불참했다고 벌레 취급 받는 느낌“

    문건에 이름이 올라 있는 A기자는 28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주도 총파업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지금껏 사내에서 벌레 취급을 받고 척결의 대상처럼 분류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A기자는 "이런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 언론노조는 일언반구도 없다”며 “이게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방송인가”라 되물었다. 

    해외 특파원으로 일했던 C기자는 "특정한 이야기를 했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회사 사정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사정이 못 된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문건에 이름이 오른 또 다른 직원은 "우리를 따돌리는 언론노조원들 중 일부도 공포에 질려있다“며 ”외국 군대가 주둔한 식민지 사람들의 공포심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고 했다. 

  •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신사옥 전경.ⓒ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신사옥 전경.ⓒ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잇단 해고... ‘압박’ 견디다 못해 자진 퇴사도 

    파행 인사와 함께 해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박상후 전 시사제작국 부국장이 돌연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취재를 방해하고 품위유지 등 취업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앞서 5월에는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던 현 모 기자와 김 모 홍보국 정책홍보부장이 해고됐다. 문건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인사 중 최 모 앵커와 권 모 카메라 기자도 해고된 상태다.

    사측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퇴사한 이들도 있다. 

    지난 4월 취재 업무에서 배제돼 영상분류 업무를 맡았던 백 모 기자는 사표를 내고 MBC를 떠났다. 그 과정에서 MBC정상화위원회의 ‘과거 리포트 조사’에 의한 압박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엔 배현진 전 앵커가 사표를 제출하고 정치권으로 떠났다. 배 전 앵커가 퇴사 직전까지 일하던 곳은 조명기구 창고실이다. 대기발령 상태였다. 

    A 기자는 "지난 정권 하에서 부당 전보를 받았을 때 '귀향살이'라고 울던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집단 린치를 가할 수 있느냐"며 "기자 일을 못하게 해서 제 발로 회사를 나가게 하기 위한 압력이란 사실을 다들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