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지병으로 굴곡진 인생 마감남편 사별 이후 건강 악화..휠체어 타고 신장투석 받아와
  • ▲ 원로배우 故 최은희의 빈소가 16일 오후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서 숨졌다. ⓒ [사진 = 공동취재단]
    ▲ 원로배우 故 최은희의 빈소가 16일 오후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서 숨졌다. ⓒ [사진 = 공동취재단]
    수십년 전 남편 신상옥 감독과 함께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拉北)됐다 망명한 사건으로 충격을 안겼던 원로배우 최은희가 향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고인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어머니가 16일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 남편(신상옥 감독)과 사별한 뒤부터 건강이 안좋아진 고인은 한 차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는 등 오랫동안 병치레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별세하기 전까지 장남의 거처가 있는 서울 화곡동 집에서 휠체어를 타고 신장투석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유족들은 영화계 의견을 수렴, '영화인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을 검토했으나, 고인의 생전 뜻을 받들어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에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로 확정됐다.

    78년 신상옥과 함께 피랍돼 장기간 고초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은막에 데뷔한 시기는 이로부터 5년이 지난 1947년부터였다.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진출한 최은희는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수많은 작품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며 50~6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동시기에 활동했던 김지미·엄앵란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고인은 다큐멘터리 '코리아'를 찍으면서 가까워진 신상옥 감독과 1954년 화촉을 밝혔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가 고인이 올린 두 번째 결혼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상옥 감독과 콤비를 이뤄 1976년까지 총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고인은 신 감독과 이혼한 뒤 1978년 홍콩에 갔다가, 돌연 북한 공작원에게 납북되는 초유의 사건을 겪게 된다. 같은해 7월 신 감독도 북한에 피랍되면서 두 사람은 북한에서 '강제로' 재회하는 인연을 이어갔다.

    1983년 '동토의 땅' 북한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총 17편의 영화를 함께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만든 영화 '소금'으로 최은희는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한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장기간 외유 활동을 하다 199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