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미투 확산·親北 정책' 좌파진영 향한 청년들 시선,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
  • ▲ 10일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에서 대한애국당 주최로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0일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에서 대한애국당 주최로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2030 세대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이 연이어 성추문 논란에 휩싸이면서 청년들이 좌파 진영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10일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추행 의혹이 폭로된 직후 의원직을 내려놨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봉주 전 의원,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안병호 함평군수 등에 이어 민병두 의원까지 당의 굵직한 인사들이 줄줄이 성(性)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만진당', 더듬어민주당', '더듬어만진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은 시인을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던 성추문의 대다수는 문화계, 정치계, 종교계를 망라하고 좌파 진영을 쓰나미처럼 덮쳤다.

    특히 의혹에 휩싸인 이들은 대부분 친문(親文) 성향이었다.

    "정치인은 똥갈보, 문재인은 숫처녀"라고 극찬했던 고은 시인, 문재인 대통령의 고교 동창이자 대선 지지 연설까지 했던 이윤택, 문재인 정권의 첫 특별사면 인사인 정봉주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안희정 전 지사는 대선 당일 문재인 당선인에게 뽀뽀를 하며 서로 얼싸 안았다. 영화감독 김기덕, 탤런트 고(故) 조민기 등은 문재인 정부가 주도했던 촛불혁명에 지지를 표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2030 세대 역시 촛불에 적극 공감해왔다. 그러나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지금 미투에 걸린 대다수 인사들이 촛불집회 때 앞장서서 정의를 부르짖고 적폐청산을 외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진보(進步)라는 단어를 붙여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 ▲ 10일 오후 서울역에서 출발한 태극기집회 행렬이 남대문 인근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0일 오후 서울역에서 출발한 태극기집회 행렬이 남대문 인근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미투(#Me too) "정의·진보 외쳤던 좌파의 이중성"

    이러한 분위기가 가장 잘 감지된 곳은 10일 오후 서울역 광장과 대한문 인근 등 도심 한복판이었다.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을 맞아 우파진영의 대규모 태극기집회가 속속 열렸다.

    서울역 광장에선 약 5,000여명 규모의 집회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1,000여명 규모의 태극기집회가 각각 열렸다. 이외에도 안국역, 광화문 주변에서도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제는 문재인을 탄핵할 차례"라고 외쳤다. 성(性) 도덕을 무참히 짓밟는 여당 인사들에 대한 실망과 청와대 안팎 문재인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집회 한가운데는 최근 문화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성추문의 주인공 이윤택 연극 감독과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등장했고 이는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구경하던 시민들 중 한 20대 여성은 "그간 정의를 외치고 진보를 주장했던 국내 좌파세력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지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40대 남성은 "박근혜 정부 때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 의혹으로 얼마나 논란을 빚었느냐? 근데 이상한 것은 그때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던 여성단체들이 이번 미투에는 유달리 조용하다는 점"이라며 좌파 카르텔을 비판했다.

  • ▲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주최로 태극기집회가 열린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윤택 연극 감독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밟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주최로 태극기집회가 열린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윤택 연극 감독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밟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달라진 젊은층, "평양올림픽 이후 대북관 바뀌었다"

    각 집회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나부꼈다.

    일부 참가자가 집회에 데려온 반려견의 등 위에도 태극기와 함께 교차하는 성조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반려견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제껏 태극기집회는 '틀딱집회'라는 비아냥으로 종종 폄하됐었다. 주로 60대 이상 노년층의 참석, 수시로 등장하는 성조기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부 청년들로부터 "미국 뽕을 심하게 맞았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집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종전과는 사뭇 달랐다. "성조기가 등장하는 이유가 이제는 이해된다"는 반응이 상당했다. 태극기집회를 바라보는 기존 시민들의 시선이 변화한 것이다.

    대한문 앞을 지나던 한 30대 시민은 "사실 예전에는 태극기집회라고 하면 박사모 회원 노인들만 모인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북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본 뒤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사실 며칠 전 막을 내린 평창올림픽을 두고 2030 세대 사이에서는 "정부에 대한 공분을 일으키기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고, 북한 현송월과 김여정을 초청해 '국빈급 대우'라는 특혜를 제공했다.

    이에 젊은층 사이에서는 '북한이 먼저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던 2030 세대 사이에서도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서울역 인근에서 집회를 지켜보던 30대 여성은 "(집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한미동맹 강화에는 깊이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이 여성은 "어찌됐든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고 동맹은 미국 아니겠느냐. 일단 우리가 살고 봐야지, 요즘 세상에 민족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웃어보였다. 최근 친북(親北) 유화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대목으로 해석된다.

  •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을 맞이한 1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태극기집회가 열렸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을 맞이한 1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태극기집회가 열렸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탄핵 후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이날 집회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촛불정권이 들어섰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남대문 방면의 태극기 행렬을 바라보던 한 30대 남성은 "생각해보면 진짜 탄핵 이후 우리 생활에 달라진 것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지난해 탄핵 사태 때 저도 촛불 행렬에 참가했었는데, 그때는 정말로 탄핵만이 나라를 올바로 찾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대규모 태극기 행렬을 보고 놀라운 기색을 내비치는 시민도 많았다.

    일부 시민들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박사모가 많았는지 몰랐다"고 웃으면서도 "왜 이렇게 1년이 넘도록 집회가 지속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회를 구경하는 시민들 중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다. 대다수는 정부의 대북(對北) 정책을 지적했다. 

    한 남성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 때 저 역시 군인이었던 관계로 북한에 정말 많은 분노를 느꼈다"며 "그런데 김영철이 이번에 정부 초청으로 방남하는 것을 보며 문재인 정부의 국가관이 의심스러웠다"고 꼬집었다.

    이어 "반면 미국 펜스 부통령이 방한해 천안함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이번 정권이 적어도 대북 정책만큼은 확실하게 문제가 있구나하는 것을 확실시하게 됐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과연 진짜 잘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