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착·북한도착 등 다양한 의증 있는 사람들 절대권력 문턱까지 가는 제도, 이제는 바꿔야
  • ▲ 8일 오후로 예정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되자, 현장에 배치돼 있던 취재진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홍성(충남)=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8일 오후로 예정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되자, 현장에 배치돼 있던 취재진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홍성(충남)=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8일 오후로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했다. 평소 달변으로 알려져 회견과 강연·연설을 즐겼던 안희정 전 지사가 최근 보여주는 민낯에 국민들은 인지부조화마저 느낄 지경이다.

    이날 충남도청에 들어서 있는 내포신도시 고속·시외버스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들과 정류장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 폭로 사태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대화에서 공통적인 종착역은 "대통령이 됐더라면 어쩔 뻔 했느냐"는 것이었다.

    자신의 캠프에서 일했고 자신이 수행비서로 특채한 인물을 해외에 공무출장을 가서까지 성폭행한 인물, 또 자신의 싱크탱크 여직원을 새벽에 호텔로 불러내 성폭행한 인물,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됐더라면 대체 어떻게 됐을까.

    안희정 전 지사가 대통령의 문턱에까지 다가갔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서 안희정 전 지사는 합리적 중도진보의 이미지에 일부 보수층의 반문(반문재인) 정서까지 등에 업고 한때 거대한 바람을 형성했었다.

    그런 안희정 전 지사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세계적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열풍 속에서 만약 현직 대통령의 과거 성폭행 사실이 폭로됐더라면 거대한 혼란이 뒤따랐을 것이다.

    헌법 제8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추받지 않는다. 따라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당장 대통령을 기소할 수는 없다. 다만 업무상 위력간음도 위법행위이므로 '법률을 위배한 때'로 보아, 헌법 제65조 1항에 따라 국회에서 탄핵을 하자는 움직임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전에 한 성폭행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또 간음 행위를 직무집행으로 보아 탄핵 사유인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법리논쟁이 뒤따를 것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공직선거법 상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의 범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탄핵을 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고 판시한 적이 있으므로, 대통령의 업무상 위력간음이 '중대한 사유'인지 아닌지도 논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국민정서법'에 따라 탄핵으로 몰고가도 문제고, 그렇다고 탄핵 시도가 불발에 그쳐 성폭행범이 계속 대통령 권좌에 있는 것도 문제가 된다.

    설령 탄핵이 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국정추진동력은 완전히 바닥날 것이다. 사실상 식물정부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해진 임기 동안 군주를 능가하는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해결방안이 없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자서전에서 "만일 의원내각제였더라면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1997년초,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특혜 대출의 배후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가 지목돼 구속됐다. 그 순간 김영삼정부는 식물정부로 전락해버렸다. 연말의 외환위기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기아자동차 사태를 비롯한 경제위기를 책임질 사람은 없었다.

    강경식 전 부총리는 의원내각제였다면 한보 사태 때 내각이 무너지고 다시 총선이 치러졌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3~4월쯤 새로운 총선을 거쳐 성립한 내각이 강력한 추동력을 갖고 금융구조조정과 산업구조조정을 이끌 수 있었으리라 회고했다.

  • ▲ 8일 오후로 예정돼 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되자, 도청 현장에 배치돼 있던 취재진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홍성(충남)=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8일 오후로 예정돼 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되자, 도청 현장에 배치돼 있던 취재진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홍성(충남)=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친아들 구속에도 무력해지는데, 하물며 대통령 본인의 성폭행 문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무력해진 식물정부 상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제왕적 대통령제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보다 더 끔찍한 경우는 제왕적 대통령의 위세 때문에 여러 여성에 대한 성폭행이 그냥 묻히는 경우다.

    이번에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여성들은 한결같이 "나와 (안희정) 지사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라거나 "안희정 지사가 절대적인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도백(道伯)도 '절대적인 지위'라 해서 피해자들이 폭로를 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하물며 가해자가 제왕적 대통령이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어쩌면 우리 국민은 전세계적인 미투 운동 속에서 마치 자신은 그와 아무 관련 없는 양 태연히 이를 응원하는 이중인격의 대통령을 가질 뻔했다.

    실제로 성폭행 의혹 폭로가 보도되던 날 대낮에도 안희정 전 지사는 도청 문예회관에서 도청 공무원들을 상대로 "충남도는 지난 3년 동안 인권도정이라는 관점에서 일체의 희롱이나 폭력, 인권유린을 막아내는 일에 힘써왔다"며 "미투 운동을 통해 인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에 동참해달라"고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호소했다.

    문제는 이런 사람도 '깜짝쇼' 등장하듯 갑자기 대두해서 절대권력의 문턱까지 갈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다.

    실제로 안희정 전 지사의 검증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선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안희정 전 지사는 의원내각제였다면 국가지도자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코스인 국회의원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중앙정치와 의정활동의 경험이 없다는 것은 국가지도자로서 자질 부족을 의미하는데도, 부질없는 바람이 일어나자 단숨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새벽에 여의도의 호텔방으로 싱크탱크 여직원을 불러내 성폭행한 그 당일에 노원구청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강연회에서 "5년 뒤면 지금보다 더 현명하고 지혜로워지겠지만 원초적인 힘은 확실히 떨어질 것 같다"며 "젊음의 힘이 있는 지금이 가장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젊음과 힘을 태연히 입에 담을 수 있는 모습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민기망이 통한다는 게 단 한 번의, 20여 일에 불과한 공식선거운동이라는 이벤트만 거치면 5년간 누구도 견제하지 못하는 절대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약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다양한 정신병리적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병'이라는 불치병에까지 합병증으로 걸린 채, 몽유병 환자처럼 '대권, 대권…'을 되뇌이며 5년에 한 번 열리는 로또긁기식 이벤트에 도전한다.

    그 증상 중에서는 성(性)관념이 도착돼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관념적 도착증세를 보이는 사람, 군부독재에 대한 퇴행적 도착관념을 가지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이 합헌적으로 절대권력을 노릴 수 있는 제도를 우리 사회가 아직껏 채택하고 있다.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아직도 국회 헌정특위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를 "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안희정 사태를 계기로, 사람이 아닌 제도의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과감하게 분산하고, 임기 도중에라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내각불신임~의회해산을 통해 총선으로 국민이 국가지도부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안희정 사태를 계기로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이 이 사태를 국가를 위해 발전적으로 수습하는 길이다.